지역의 문화 역량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 중에 도서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나 조선 전기에 사고(史庫)를 읍성 안에 두었던 충주의 경우에 그 역사ㆍ문화적 위상에 맞는 뭔가를 표현해 줄 공간의 하나로서 도서관의 의미는 남다를 수 있다. 충주시립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마을 단위의 분관이 설치되어 그 수에 있어서는 예전에 비해 훨씬 풍성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서관이 이 지역에 뿌리내린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충주에 도서관 같은 도서관이 정식으로 개관한 것은 1954년이다. 즉 1954년 4월 10일 오전 10시에 국립도서관 직할문고 설치 및 읍립도서관 개관식이 열렸다. 아직 충주군 시절로 군의 중심이었던 충주읍에 읍립도서관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도서관 개관에는 직전 군수였던 정희택(鄭喜澤) 씨와 읍장 박승두(朴勝斗) 씨의 개인 소장도서 1,480권을 기증받고, 여기에 국립도서관으로부터 대여받은 1천여 권을 합쳐 2,500여 권의 양서를 구비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특히 국립도서관(현, 국립중앙도서관)의 최초 직할문고라는 의미를 더한다. 그래서 당시 개관식에는 국립중앙도서관 제2대 관장이었던 조근영(趙根泳) 씨가 직접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었다.(충북신보. 1954. 4. 14. <도서관 개관식 성대>)
당시에 충청북도에는 청주에 교육도서관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좌석 54석에 3,100부의 장서를 가진 청주교육도서관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또한 이에 앞서 청주시립도서관이 있었지만, 전쟁 중에 파괴되어 재건되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러한 시기에 충주읍립도서관이 국립도서관 직할문고 제1호로 새롭게 출발한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1년이 지난 1955년 4월 10일에는 도비보조금과 읍예산으로 1,000여 권의 신도서를 구입하였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이것은 그간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책이 중심이 되어 개관한 읍립도서관에 8.15이후 발간된 서적을 구비한 것이라고 한다.(충북신보. 1955. 4. 12. <신도서 구비>)
다시 1년이 지난 1956년 7월 8일이 되면, 충주군이 충주시와 중원군으로 분립된다. 이 때 충주시 승격을 축하하는 신문광고에는 ‘국립도서관 직할문고 충주시립도서관’이라는 단독 기관으로 광고를 싣기도 하였다.
남부러운 시선으로 주목받으며 출발한 충주읍립도서관은 충주시가 분리 승격됨에 따라 충주시립도서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충주의 가장 큰 화두는 충주비료공장, 충북선 연장, 충주수력발전소 건설 등 건설 중심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관리는 다소 소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1961년이 되면 도서관 청사 노후와 서적 미비 등으로 그간 난관에 처해 있었다는 기사와 함께, 충주문화원(忠州文化院)에서 도서관 관리를 이양받아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고 청사를 성서동 신라사장(新羅寫場)으로 옮겨 시민이 원하는 도서관을 마련하겠다는 기사가 등장한다.(충청일보. 1961. 2. 23. <충주시립도서관 시설정비로 재발족>)
같은 해에 그간의 충주시립도서관 운영과 관련된 여정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등장한다. 즉, 충주시립도서관은 4287년(1954) 충주읍 시절에 읍사무소 청사 내에 설립되었다. 그 후 농협 건물(현 성내동 NH농협 충일지점)로 이전하였었다. 그리고 1961년 현재 성서동 소재 김장희(金章熙) 씨 소유 2층 건물 23평에 보증금 50만환에 월세 1만환을 지불하여 이름만의 도서관으로 근근 지속을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충청일보. 1961. 11. 2. <열람석 겨우 30석, 충주도서관 대책도 긴급>) 그리고 장서의 경우 3천권 정도가 비치되어 있는데, 1931년(소화 5년) 이전에 제본된 일서(日書)와 1954년 창립 당시 구입한 이후 도서구입을 한 일이 없고, 문교부 번역 기증도서가 3~40권 정도라는 것이다. 열람석의 경우에도 24석이 있던 것을 5.16이후 충주시 의회비로 8석을 구입해 32석이며, 목조건물인 관계로 출입자들의 발걸음 소리로 인한 소음 때문에 불평을 사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고심한 결과 1963년 4월 27일에 총공사비 79만원을 들여 충주시립도서관이 신축ㆍ개관되었다. 이것이 현재 60대 이상의 시민들이 기억하고 있는 사직산에 있던 시립도서관으로 건평 본관 57평, 숙직실 11평에 44석의 열람실을 갖췄고, 재래 보유도서 2,000권을 비롯하여 400여 권의 신서적을 구입하여 새 건물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충청일보. 1953. 5. 20. <충주시립도서관 개관>) 신축 도서관 개관과 함께 열람시간 역시 조정되었는데, 정규열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었으나, 학생들의 이용 편의를 도모하고자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확대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4년에는 도서관의 관리 운영 주체가 충주시교육청으로 이관되었다가 1969년에 다시 충주시청으로 이관되어 시의 부속기관으로 기능해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 중간인 1979년에 (주)중앙일보 동양방송(TBC)에서 예성공원에 있는 구 도서관을 건축해 기증하면서 도서관이 지금의 공간에 자리잡았다. 그 시기에 충주교육청에 부설된 학생도서관이 있어서 2개 도서관 체제로 운영되었었다. 하지만, 당시 도서관 기능의 많은 부분이 학생들의 공부방 기능으로 이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1995년에 확장공사를 가졌다. 그리고 2006년에 현재의 유리도서관을 신축ㆍ재개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2011년 목행, 봉방을 시작으로 2012년 연수힐스, 시청, 수안보, 2013년 대소원, 엄정, 2017년 꼬마도서관 7개소, 2019년 올해 4월 12일에는 충주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개관하였고, 차량을 이용한 이동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서 어린이ㆍ호암ㆍ엄정은 분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간에 세월이 된 지금은 예전에 비해 보다 쉽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근 20년만에 국립중앙도서관에 다녀온 일이 있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걸어간 그곳은 입구에 국립디지털도서관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옛 건물은 그대로 있었으나, 그 구조는 그간 많이 변했고 이용 방식 역시 디지털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이크로필름 열람을 위해 5층 고서실에 갔는데, 예전처럼 노인들이 상주하는 공간이었다. 그들은 주로 집안 족보를 열람하는 분들이었다. 충주에서 직접 접하기 어려운 인터넷 환경에서의 자료 열람을 위해 디지털도서관도 이용해 보았다. 돌아온 며칠 후 시립도서관 5층의 디지털자료실을 이용해 보았다. 국회도서관 전용 열람석이 2곳 마련돼 있어서 국회도서관 자료를 접하는데 있어서 편리함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료가 열람 전용이어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의 경우 직접 연결된 체계는 아직 미비했다.
양적으로 외형적으로 도서관 같은 도서관의 모양새를 갖춤은 중요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정보를 특정 도서관 한 곳에 모으고 가두기에는 부족하다. 보다 자료가 많은 선진도서관과의 온라인 협약을 통해 상호 이용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충주시립의 경우 교통대와의 협약 운영 체계는 갖추어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지역의 또다른 대학인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와의 연계는 아직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충주시립도서관의 경우 ‘향토자료실’을 마련하여 지난 10여년 간 자료의 모집과 운영의 내실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올해는 4층의 참고자료실을 개조하여 향토자료실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막상 그 곳에 비치된 자료를 보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충주이기 때문에 가지는 장점의 하나는 충주에서 생성된 도서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함께 충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도의 온당함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방법을 위한 노력이 지난 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의 자료 수집과 관리가 필요할텐데, 아쉬운 점은 충주에서 오랜 동안 활동하면서 수천, 수만 권의 책을 모아온 원로들의 마지막 길에 책을 믿고 기증할만한 적당한 기관이나 단체가 없다는 점이다. 전체가 그렇지는 않으나 많은 부분 충주와 관련한 직간접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다량 소장자들의 도서 기증처가 충주시립도서관이 되면 좋을 것 같고, 그 공간이 기증도서실이 따로 마련되거나 또는 향토자료실의 부속 공간으로 운영하여 자료를 확충함으로써 내실을 기하는 방법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충주시립도서관의 공식 시작이 1954년이면 65년된 이야기다. 그렇다면 1954년 출발 당시에 있었던 2,500여 권의 장서 중에 지금 현재 소장하고 있는 것이 몇 권이며 무엇인가 묻고 싶다. 신간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좁은 서고를 이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래된 책을 우선 폐기하는 사례는 전국의 여러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일이다. 충주시립도서관만큼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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