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연원역(連原驛)의 오늘

우보 김희찬 | 기사입력 2023/10/02 [17:09]

128. 연원역(連原驛)의 오늘

우보 김희찬 | 입력 : 2023/10/02 [17:09]

 

충주시 연수동(連守洞)은 연원(連原)과 동수(東守)라는 두 마을을 합치면서 비롯된 이름이다. 불과 100년 조금 넘은 일이다.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연원의 연(連)과 동수의 수(守)를 따서 연수동이라 한 것이다.

 

연원 마을에는 연원역(連原驛)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연원역은

 

주 북쪽 5리에 있다. 찰방(察訪)이 있다. 본도(本道)에 속하는 역은 14개인데, 단월(丹月), 인산(仁山), 감원(坎原), 신풍(新豊), 안부(安富), 가흥(嘉興), 용안(用安), 황강(黃江), 수산(壽山), 장림(長林), 영천(靈泉), 오사(吾賜), 천남(泉南), 안음(安陰)이다. 찰방 1인이다.

 

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충청도에 있는 5개 찰방 중에 속역(屬驛)이 두 번째로 많았던 역이다. <대전통편>에 기록된 충청도 전체 관원 중에 찰방은 관찰사(1인, 종2품), 도사(1인, 종5품), 목사(4인, 정3품), 도호부사(1인, 종3품), 군수(12인, 종4품), 판관(1인, 종5품), 현령(1인, 종5품) 다음의 종6품직이었다. <호서읍지>에 기록된 연원도찰방 휘하의 인원은 그 아래에 이(吏) 34인, 지인(知印) 17인, 사령(使令) 10명, 노(奴) 110명, 비(婢) 94명이며, 연원역에는 대마(大馬) 3필, 기마(騎馬) 4필, 복마(卜馬) 7필을 두었다고 한다. 일반역이 노비와 말의 수를 표시한 것과 달리 여러 역을 관할하는 만큼 그에 따른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연원역은 일반적인 역이 마방과 여관 등의 공간이 주를 이룬 것과 달리 찰방의 집무 공간을 별도로 두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연원도찰방의 존재는 충주가 가졌던 지리적 위치와 역할 또는 정치적 비중에 견주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가흥역에서 언급되겠지만, 수운판관(水運判官)의 존재 역시 충주가 수륙교통 운송 체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얘기해주는 지표가 된다.

 

연원역 역시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종말을 고한다. 그러나 역 공간과 그에 딸린 역둔토는 일정 기간 존치되며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파괴되어 갔다.

 

역제가 폐지된 후에 연원역에 있었던 특수한 사건을 보면 ① 1898년 7월~12월 연원 주둔 병참비 및 타가(馱價)를 호전(戶錢) 중에서 구제하라는 명령 ② 1905년 3월 20일자 충청북도 봉세관 이승우의 보고에 ‘충주군 연원역 공해(公廨)는 경장(更張;1894) 이후 청주진위대 지파(支派) 병참(兵站)으로 삼아왔고’라고 하였고, ③ 1905년 5월 17일자 충주군수 장준원의 보고에는 ‘청주진위대 환참(還站) 후에 연원역 공해의 관리처가 없으므로 충주군으로 각별히 수호하게 하여 퇴락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역제가 폐지된 후에 청주진위대의 충주 파견대가 주둔한 병참으로 1905년 3~4월까지 이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역둔토와 관련된 진정이나 보고 문서들이 다수 존재한다. 마름의 횡포나 도조의 부당함 등 역둔토와 관련된 실제 생계 문제를 진정하는 예도 다수 보인다. 그만큼 역제 폐지 후에 역에 딸린 토지의 이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연원역에 딸린 역둔토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1914년에 측량된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연수동 내의 국유지 분포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밭은 57필지 40,553평(연수동 전체 밭의 16.56%) ② 논은 47필지 76,099평(연수동 전체 논의 24.72%) ③ 대지는 18필지 13,709평(연수동 전체 대지의 57.91%) ④ 임야는 10필지 36,904평(연수동 전체 임야의 62.42%)이다. 이는 연수동 전체 636,822평의 26.26%가 국유지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단월리의 경우 75필지 260,923평에 34.74%의 국유지 점유 비율과 비교할 때, 비율은 낮지만 면적은 약 2.5배 규모이다. 그만큼 재정적인 뒷받침이 상대적으로 튼튼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논밭의 비중이 큰 만큼 그에 따른 토지 다툼의 소지가 많았을 것을 예상케 하기도 한다.

 

1920년대 중반에 들면서 일제는 농촌을 대상으로 모범부락, 모범면 운동을 펼친다. 그리고 1930년대에 들어서는 농촌갱생운동으로 이름을 바꿔 식민통치를 강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연수동은 1차 갱생운동 모범마을로 동수(東守) 마을을 선정했고, 1935년에 2차로 연원의 동편(東便) 마을을 선정했다. 농토를 기반으로 하는 저들의 꿍꿍이가 중심마을 육성사업 형태로 가해지면서 소작 관계에 의한 연원역의 흔적은 거의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 1916년 측량된 1:1만 지형도에서 연원 부분. ①은 연원역 입구로 여제단(厲祭壇) 자리, ②는 연원역 자리, ③은 연원도찰방의 집무 공간으로 각각 추정됨. 이 지형도를 지금 현장에 가서 길을 찾으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다.  



개념상 존재하는 연원역의 공간적인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연수동의 연원 지역은 도시계획에 의해 구획 정리된 부분이 많다. 특히 충주시청이 금릉동 청사로 옮긴 후에 상가와 아파트 단지의 조성 등으로 공간적 변형이 심한 곳이다. 이런 가운데 결론부터 말하면, 연원역 공간은 신기할 정도로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어 있다. 계획지역 중간의 섬처럼 존재하고 있는 연원역 공간은 1914년에 측량된 지적원도와 1916년에 측량된 1:1만 지형도를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장을 둘러보면 연원역 공간의 윤곽이 거의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적원도에서 보면 지번 470번~500번 대에 대지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1:1만 지형도를 확대해 보면 연원 마을의 동편과 서편마을로 구분할 수 있는 길(골목)을 중심으로 서편 쪽에 너른 마당을 이루는 대지가 있고, 동편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밀집형 구조를 이룬다. 문제는 이렇게 구분되는 두 개의 공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도로에서 들어오면서 만나는 서편 구간은 너른 마당이 존재하는 만큼 마방이 있었을 역공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동편 마을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밀집된 곳은 길에 의해 다시 두 세 공간으로 분할된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안쪽 공간의 경우 1910년과 1915년에 측량된 1:5만 지형도에서 큰 건물이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동편 마을 안쪽 공간은 연원도찰방이 주재했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일반적인 역기능과 함께 연원도의 14개 속역을 관할하는 별도의 공간이 존재했음을 가정할 때에 전체적인 마을 구조가 이해된다. 100년 전의 지적도와 지형도를 가지고 현장을 돌아보면, 최근의 도시계획에 의해 직선화 내지 확장공사를 한 중앙 도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옛길이 골목 형태로 남아있다. 그 골목을 따라 공간을 가늠해보면 의외로 공간의 윤곽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원역의 공간적 위치를 살피면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있다. 주도로에서 연원역으로 들어가는 삼거리 갈림길에는 현재 편의점이 하나 위치해 있다. 마을이 개발되기 전에는 마을 어귀의 슈퍼로 있던 자리이다. 구지번 737번지로 지목은 사사지(社寺地)이며, 토지소유는 연수동으로 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충주목의 여제단(厲祭壇)이 있던 자리이다. 북진으로 통하는 주도로의 중간, 그리고 연원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뭇주검을 위하던 여제단이 자리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특별한 이유에서 그곳에 두었는가는 따로 살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여귀(厲鬼)로 통칭되는 불쌍한 귀신을 위로하던 공간이 역 입구에 있었다는 점은 연원역이 가지는 또다른 특색 중의 하나이다.

 

연원역 역시 다른 역과 마찬가지로 마땅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역이 위치했었던 표식은 없다. 그리고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연원역 공간은 도심의 섬처럼 아파트에 둘러싸여 그 외형을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다. 주변의 개발 상황에 비춰보면 여느 곳보다 쉽게 파괴 또는 변형될 공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연원역이 가졌던 역사적 위상과 역할에 걸맞는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공간을 기억할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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