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에서 수회리까지 - 1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1/02 [14:06]

수안보에서 수회리까지 - 1

김희찬 | 입력 : 2024/01/02 [14:06]

 

 

수안보 족욕장에서 발을 담그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면, 수회(水回)에 이르는 다음 일정을 잡는다. 수안보상록호텔은 본래 수안보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그 옆에 물탕공원이 있다. 공원과 호텔 경계에는 이장 오순영(吳順泳)과 면장 김영태(金泳泰)를 기억하는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오순영은 수안보초등학교(현, 수안보상록호텔), 김영태는 수안보중학교(구, 수안보와이키키) 부지를 희사한 이들이다. 그 옆으로 <수안보동규절목>으로 불리는 <고사리면 온정동 동규절목(洞規節目)>(1892)을 새긴 커다란 비석이 하나 있다. 앞면은 한문으로, 뒷면은 번역문으로 각각 새겼는데, 꼼꼼하게 살펴보면 조선시대에 수안보와 그 주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는 “우리 동네는 영남과 호서지방간에 걸쳐있고 또 주정봉수와 마골재봉수 아래 있어 부역에 응함이 다른 곳과 더불어 다름이 있고, 또한 온천으로 인해서 아침에 모이고 저녁에 흩어지는 부류가 법과 윤리를 어지럽게 하는 일을 한결같이 예사로 하니 이와같은 폐단을 한번 시정한 연후에야 인륜이 밝아질 수 있는 것이고,”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이것으로 상황을 정리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고단한 삶이 그려진다.

 

수안보는 문경 새재를 넘어오며 지나는 영남대로(嶺南大路)의 길목에 위치한다. 치료를 목적으로 온천을 찾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생긴 폐단을 단속하기 위해 동규절목을 정해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돌고개 너머에 있었던 안부역(安富驛, 대안보) 또한 끊임없는 길손들의 왕래에 응대하기 바빴다. 안부역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에는 대사동(大寺洞)이 있다. 대사 마을은 지릅재 고개 위에 있었던 마골재봉수(麻骨岾烽燧)와 관련하여 부역(賦役)이 지워졌고, 또한 수안보를 지나 오산(烏山) 마을의 경우 주정산봉수(周井山烽燧)와 관련하여 부역이 지워졌던 곳이다. 두 개의 봉수와 하나의 역, 온정원 등 네 개의 국가 중요 시설이 있었던 만큼 그에 따른 부역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매인 삶이었을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개 면 단위에 촘촘히 들어선 시설이 이렇게나 많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이렇게 덧씌워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수안보온천이 각광받기 시작할 때에 그린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여기에 새재를 넘어와 고사리에 있었던 신혜원(新惠院)과 이번 일정의 종착역인 수회에 수회참(水回站)을 보태면 국가시설의 설치와 그에 따른 부역의 힘겨움이 더욱 가중된다.

 

『9월 6일 아침. 조식을 마치고 잠시 산책하니 볼만한 바 없고 상학종(上學鍾) 소리에 뛰어 몰려가는 학동들이 모자도 없고, 보선도 없고, 등거리 잠방이로 까칠하니 가는 것이, 땅은 풍비(豊肥)하거늘 사람은 빈척(貧瘠)하다는 차탄(嗟嘆)을 발하게 한다. 어젯밤에 임검(臨檢)왔노라고 여사(旅舍)에 쫓아왔던 이 지방에서 기세 좋은 경관주재소 앞을 지나 여사에 돌아왔다.

 

“우리 가가로 가시이, 약주 한 잔 잡수시이.”

 

여사의 주부(主婦)가 두 뺨에 웃음을 괴이고 다정하게 권하는 말이다. 오늘은 수안보 장날이다. 장보려고 가가(假家)로 가면서 권하는 말이다.』(안재홍, 「조령천험을 넘어서(6)」, 『조선일보』, 1927. 9. 20일자)

 

사뭇 낯선 억양과 풍경이다. 1927년 8월에 수안보장의 개설이 허가되었다. 1일과 6일을 손꼽아 그때부터 열린 장은 100년을 앞두고 있다. 지금도 그 날이면 장이 선다. 그러나 예전 같지 않다. 지난 100년간 변해온 수안보온천의 성쇠와 함께 수안보 장날도 저물고 있다. 다만 ‘기세 좋은 경관주재소’는 치안센터로 전환하였고,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삼거리를 중심으로 묵직한 비석들이 세워져서 화려했던 수안보의 20세기를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물탕공원과 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성황당이 있다. 길가에 세워 놓은 장승의 익살스런 표정과 만나며 약간 남아 있는 옛길의 잔상을 따라 2010년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배남지 성황당’이라는 표석이 있지만, ‘배남지’가 무슨 뜻인지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 칸 기와집으로 조촐한 모양새다. 돌고개 서낭당이 길가에 비교적 널찍한 공간에 균형잡혀 있다면, 신작로와 외떨어진 수안보 성황당은 옹색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 이 길을 지나던 이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을 성황당의 의미가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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