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기록될 문화도시, 글로컬 충주!

최성자 문화산업경영학 박사 | 기사입력 2024/01/08 [11:05]

또다시 기록될 문화도시, 글로컬 충주!

최성자 문화산업경영학 박사 | 입력 : 2024/01/08 [11:05]

▲ 최성자 문화산업경영학 박사     ©충주신문

그토록 갈망하고 염원하던 ‘문화도시’로 선정된 충주는 지금 많은 생각들이 꿈틀대고 있으리라고 본다. 3번의 고배를 마시고 난 후, 2년 동안 충주를 연구하고 충주에 맞는 문화를 찾아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한 결과물이니만큼 기쁨도 크지만, 막판의 문화도시 선정기준에 변수가 있었던 터라 마음 졸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충주는 어떤 도시였던가? 1956년 일찍이 시로 승격했으니 오래된 역사적인 시다. 고려 성종 때도 이미 목(牧)으로 도시? 였고, 지역도 넓고 백성도 많은 교통의 요충지로 삼국, 통일신라시대부터 지방 도시였던 것도 맞다.

 

조선 전기부터 후기에도 굳건한 상업 기반을 확보하고 있어 단순한 행정도시가 아니라 경제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명도(名都)라는 용어를 쓸 만큼 도시성이 강했다. 1789년 정조 13년 호구 수를 보면 1만 1,905명으로 인구수가 기본인 도시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1956년 충주와 삼천포가 시로 승격하고 1977년은 공업단지 조성으로 인력을 흡수한 제대로 된 역사를 지닌 시였다.

 

이렇듯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이질적인 개인들이 모여 사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 생활에서 나타나는 개인들의 익명성은 도시인들의 사회관계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람들과의 접촉은 많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 도시민들은 공동체 의식이 그리 강하지 못한데, 그것은 지역인들의 구성이 바탕이 되어 있 기 때문에 도시민이라는 특성이 그다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부터 ‘문화’가 도시와 국가를 살린다는 역사적 변화를 맞이한 세계에 발맞추듯 우리나라도 문화발전에 힘쓰기 시작하지만, 감을 잡지 못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급격한 문화발전을 하게 된다. 그리고 21세기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세계의 문화가 빠르게 다양성을 추구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약적 발전의 글로벌 문명 공동체가 되며 우리도 그 일원이 되었다.

 

충주는 글로컬 중심도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로 글로컬이라 했으리라 짐작한다. 지역적인 것의 세계적 생산과 세계적인 것의 지역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충주 고유의 특성을 살린 문화콘텐츠 개발로 세계와 교류하는 창조산업으로 그동안의 타 문화도시와는 다른 세계화로 가는 도시로 변모하려고 한다.

 

글로컬이라는 문화도시의 큰 그림을 그린만큼 지역민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 거리감 없이, 소외되지 않게 충주시민을 위한 정보와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본다. 특정한 시민이나 선점한 시민들에게만 기회가 제공되지 않도록 힘써 주기 바라며, 역사적 충주시답게 또다시 기록될 ‘문화도시, 글로컬 충주’라는 이름답게 열린 충주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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