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진영(鎭營)이라고 하면 잘 모른다. 충주수비대(忠州守備隊)라는 이름의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던 공간 또는 그 후에 충주세무서가 있었기에 구 세무서 자리라고 하면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그 자리에 지금은 장례식장이 들어서 있어서 옛 모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둘레만큼의 공간을 감싼 주변 길에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정도이다.
몇 장의 사진이 있어서 옛 모습을 가늠해 보려고 했었지만 쉽지가 않다. 다행히 얼마 전에 1916년 충주를 측량한 1:1만 지형도가 찾아져 충주 진영 공간의 전체적인 윤곽을 확인할 방법이 생겼다. 파괴된 뒤에 뒤늦게 찾아진 지도에 표시된 공간은 상대적으로 충주읍성의 여러 공간을 추정하는 것보다 유리하고 자세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충주진영에 대한 직접적인 공간 명칭은 <여지도서(輿地圖書), 1759>의 공해(公廨) 조에 ‘후영(後營) 아사(衙舍)’라고 보인다. 남문 밖에 있으며, 24칸이라고 했다. 아울러 군사시설 관련으로 훈련청(訓練廳 : 서문 밖에 있으며, 17칸), 군관청(軍官廳, 남문 안에 있으며, 9칸), 기패관청(旗牌官廳 : 서문 안에 있으며, 9칸), 무학당(武學堂 : 현(縣)의 서쪽 5리에 있으며, 7칸)으로 각각 기록돼 있다. 충원현(忠原縣)으로 강등된 시기의 기록이므로 현(縣)이라고 했다. 후영(後營)이라고 한 것은 <속대전(續大典)>에 기록된 충청도의 진영 체계에서 전영(前營)-홍주(洪州;홍성), 좌영(左營)-해미(海美), 중영(中營)-청주(淸州), 우영(右營)-공주(公州), 후영(後營)-충주(忠州)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진영 체계의 확립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이루어졌다. 즉, 1593년에 훈련도감(訓練都監)을 설치하고 이어서 1594년에 속오군(束伍軍)을 창설하며 왜란을 통해 드러난 군사면의 문제점을 시정하려 하였다. 특히 지방에는 한 도에 몇 개의 영(營)을 설치하고 수령 대신 영의 최고책임자로써 군사 지휘를 담당하는 영장(營將)을 두는 방안이 실행되었다.
충주의 경우에는 1595년 12월 16일(갑인) 기사에 “충청도로 말하면 이시발(李時發)이 내려간 뒤에 조련의 모양이 대강 이루어졌으나, 포수(砲手)ㆍ살수(殺手) 각 1명에게 각기 봉족(奉足) 2명씩을 주었다 하니, 편오군(編伍軍) 3천 명에 그 봉족을 통틀어 계산하면 거의 1만여 명에 이릅니다.”라고 하여 속오군과 함께 진영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1년에 우참찬 홍진(洪進)의 건의로 진관(鎭管) 수령이 영장을 겸임하게 되었고,(<선조실록> 권134. 34년 2월 기묘) 다시 정묘호란(丁卯胡亂) 직후인 1627년에 병조판서 이정구(李廷龜)의 건의로 각 도에 5영을 설치하고 당상(堂上) 이상의 무관을 영장으로 파견하여 훈련을 전담하고 유사시에 대비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인조실록> 권16, 5년 4월 병진) 1628년 8월 23일(신해) <승정원일기>에는 “충훈부가 아뢰기를, 회맹제(會盟祭)에 와서 참가할 지방에 있는 감사, 병사, 수사, 변장 등에게 이미 통지하여 기한 전에 올라오도록 하였는데 근래 각 도의 영장(營將)에게는 미처 통지하지 못하였습니다. 홍주 영장(洪州營將)인 정사공신(靖社功臣) 노수원(盧守元), 충주 영장(忠州營將)인 진무공신(振武功臣) 최응일(崔應一)을 속히 올라와 제사에 참가하도록 하는 일로 공청 감사(公淸監司)에게 파발마를 보내 행회해야 할 것입니다.…(후략)…”라고 하여 충주 영장 최응일의 이름이 확인된다.
영장의 파견은 북벌론을 내세우며 군사력을 강화했던 효종대에 틀이 확정되었다. 1654년(효종 5년) 2월에 특진관 원두표(元斗杓)가 “사변이 항상 뜻하지 않은 데서 발생하니, 남방의 16영(營)에 영장(營將)을 차출하여 보내 군무(軍務)를 전적으로 다스리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수령으로서 으레 겸직하도록 한다면 임시해서 일을 그르칠 걱정이 있을까 두렵습니다.”라는 건의가 받아들여져 계속되었다. 그러나 1895년(고종 32) 을미개혁 때 조선 후기의 병영(兵營)ㆍ수영(水營) 등 지방군과 함께 폐지되었다.
운영과 관련하여 <호서읍지(湖西邑誌, 1871)>의 ‘진영사례(鎭營事例)’를 참고하면 충주 진영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주요 건물로 ① 동헌(東軒) 21칸, ② 삼문(三門) 4칸, ③ 수직방(守直房) 4칸, ④ 폐문루(閉門樓) 8칸, ⑤ 내아(內衙) 8칸, ⑥ 책방(冊房) 3칸, ⑦ 장청(將廳) 7칸, ⑧ 집사청(執事廳) 5칸, ⑨ 교사청(敎師廳) 4칸, ⑩ 영리청(營吏廳) 7칸, ⑪ 급창방(及唱房) 3칸 등은 1870년에 모두 재건하였고, ⑫ 군뢰청(軍牢廳) 12칸을 남문 밖의 독립된 진영 공간으로 존재했었다.
인원으로는 영장(營將) 이하, ① 군무군관(軍務軍官) 50인(人), ② 토포군관(討捕軍官) 30인, ③ 군무청득군관(軍務請得軍官) 100인, ④ 별장(別將) 2원(員), ⑤ 천총(千摠) 3원, ⑥ 파총(把摠) 6원, ⑦ 군무좌수(座首) 1원, ⑧ 집사(執事) 2인, ⑨ 군기감관(軍器監官) 2인, ⑩ 초관(哨官) 33인, ⑪ 기패관(旗牌官) 65인, ⑫ 교사(敎師) 훈도(訓導) 44인, ⑬ 군색(軍色) 1인은 이방(吏房)이 겸대(兼帶)하고, ⑮ 토포색(討捕色) 1인은 형방이 겸대, ⑯ 군기색(軍器色) 1인 ⑰ 마두(馬頭) 1인은 연원역에서 차출, ⑱ 통인(通引) 18인, ⑲ 군뢰(軍牢) 17인, ⑳ 모속(募屬) 41명 ㉑ 사령(使令) 4명, ㉒ 급창(及唱) 2명, ㉓ 방자(房子) 1명, ㉔ 구종(驅從) 1명, ㉕ 도척(刀尺) 1명 외에 ㉖ 사산(四山)의 봉대(烽臺)에 별장 4인, 감관 20인, 오장(伍長) 4명, 군사 400명으로 편제되었었다.
본연의 군무(軍務) 외에 진영에서 담당했던 제향(祭享)으로 둑제(纛祭)가 있었다. 그리고 충주줄다리기가 매년 2월에 행해졌다고 하는데, 이때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고 동편은 목사(牧使)가 영수(領首)로, 서편은 영장(營將)이 영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무학당(武學堂) 앞 ‘무예노리’가 행해졌다고 하는데, 1713년(숙종 39)에 무학당 6칸을 건축하고 매년 가을에 ‘무학당 전 좌우에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나열시킨 후 충주영장(忠州營將)과 연원찰방(連院察訪)이 구갑주(具甲冑) 기역마(騎驛馬)하고 가단에 질치왕래(疾馳往來)하며 왜장(倭將) 청정(淸正)을 효수(梟首)한다고 대성호칭(大聲呼稱)하며 무예를 연습하는 고로 차시에는 관람인이 노소남녀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운집하여 인산인해를 이루더니, 이조 고종왕 30년 즉 단기 4226년(1893) 계사(癸巳)에 폐지하였다.’(김상현, <예성춘추>, 1959)고 한다.
충주 진영 공간은 1895년 제도가 폐지됨과 동시에 충주관찰부가 설치되면서 충주군청으로 이용되었다. 그에 따라 청주병영의 충주파견대가 폐지된 연원도찰방 건물과 부지에 주둔하기도 했다. 동시에 관찰부의 관찰사 업무공간으로는 청녕헌이 선화당(宣化堂)으로 이용되었다. 1905년 11월에 일본 수비대가 충주에 주둔하면서 진영 공간을 차지하였고 1922년 철수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 후 1924년에 충주실업학교(충주농고) 설립을 위한 청원에서 수비대 공간을 학교 교사(校舍)로 이용할 것이 논의되었으나 불발되고, 여자잠업강습소로 이용되었다. 이 때의 건물과 공간 상황을 보면 ‘① 부지 2350평, ② 목조 <후엘도> 즙(葺) 평가건(平家建) 2동, 건평 164평, ③ 목조 와즙(瓦葺) 평가건(平家建) 1동, 건평 33평, ④ 부속건물 13동, 건평 136평’(매일신보. 1924년 8월 10일자 4면, <충북북부 5군민 실업학교 설치운동 백열화>)으로 기본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충주 진영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후기 충주 지역의 군사 행정의 중심 공간이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실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간에 대한 이용 역시 1920년대 중반까지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었으나 방치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민간에 매각되고 현재 장례식장이 들어서면서 공간 전체가 파괴되었다. 뒤늦게 찾아진 공간의 윤곽을 바탕으로 자료정리라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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