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점점 더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타인이 자신을 더 가혹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더욱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사회적 완벽주의’가 일반화 되어 가고 있음을 연구한, 심리학자 토머스 커런 박사팀의 연구자들이 한 말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이 현상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는 어떡하면 완벽하게 살 수 있을까를 꿈꾸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의 완벽함은 무엇을 말하며, 이제껏 완벽한 인간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사회현상 속에서, 완벽에 이르는 ‘육각형 인간’을 선망하고 ‘육각형 인간 놀이’까지 하는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의식과 대비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140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 지구는 약 46억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 출현은 약 37억 년 전이지만, 인간의 역사로는 최초의 원시 인류인 오스랄로피테쿠스로부터 약 2백만 년이 되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는 불과 20만 년 되었고, 지금 인간의 직계 조상이라 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아주 현명한 사람’이 된 지는 약 3만 년에 불과한 것이 현재 우리 인류의 역사이다.
우리의 생활상을 알기 위해 오래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에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지만, 식량과 영토, 종교로 인한 부족 간,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 등으로 인류는 지금까지 변화하면서 살아왔다. 21세기 지금 우리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 닿는 문화,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는 전쟁으로 인한 변화는 아니지만,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의 결과물들이라 할 수 있다. 지속되는 산업혁명은 인류를 빈부로 가르게 했고, 세계의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간의 격차를 새로운 차원으로 만들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지구 연구소 소장인 제프리 삭스는 ‘빈곤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1820년 당시 세계 경제의 선두에 있던 영국과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아프리카 사이의 간극이 1인당 소득에서 4대 1이었다. 그러나 1998년에는 가장 부유한 경제를 자랑하는 미국과 가장 빈곤한 지역인 아프리카 사이의 간극은 20대 1로 넓어졌다’라고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했다.
세계 인구는 40억 명에서 현재 80억 명으로 50여 년 만에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에,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세계 인구의 무려 20% 정도는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유엔 등 국제구호기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프리 삭스는 2025년까지 빈곤 퇴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육각형 인간’이 언급되고 있는데, 특별히 육각형을 지칭한 것은 완벽함 때문이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원 등 여러 도형 중에서 완전한 도형이 육각형으로, 모든 변의 길이가 같은 정다각형 중 평면을 빈틈없이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육각형이다. 또한 최소의 재료를 가지고 최대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경제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도형이 한 점을 중심으로 모일 때 각의 합이 360°이어야 평면을 덮을 수 있다. 정삼각형은 내각이 60°로 360°가 되려면 6개의 각이 필요하고, 정사각형은 내각이 90°로 4개의 각이 필요하다. 육각형은 120°의 내각이 3개면 360°가 된다. 반면에 원은 이어 붙일 때 사이사이 빈틈이 생겨 공간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육각형은 완벽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육각형으로 된 구조물을 보면 먼저 벌집을 떠올리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센 구조인 육각형의 벌집 구조에 대한 비밀은 1965년 헝가리 수학자 ‘페예시 토트’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벌집은 균형 있게 힘을 배분한 내구성 덕에 방 무게의 30배나 되는 양의 꿀을 담을 수 있다. 이러한 육각형을 이용한 구조로 된 것들을 보면 인공위성의 본체, 노트북, 고속열차 앞부분, 대형 망원경, 건축물, 원목 가구 등등의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쓰여지고 있는 구조이다.
완벽한 도형 육각형과 같은 인간은 그럼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분위기로 따진다면, 첫째 자산, 둘째 외모, 셋째 직업, 넷째 학력, 다섯째 집안, 여섯째 인성(성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모든 면에서 약점이라고 할 것이 없는 이를테면 완벽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노력해서 이루어 낸 사람이 아닌 이미 ‘타고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성형이 필요 없을 만큼 예쁘고 잘생긴, 집 안 경제력은 이미 형성되어있고, 공부도 잘해 좋은 학력을 갖추고 직업도 아주 좋은, 게다가 착하기까지 한다면 인간으로서 완벽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요즘 말하는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마음껏 누리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미 미국 대학가에서 2000년대 초에 많이 쓰였다고 하는 ‘아무 노력 없이도 완벽한(effortlessly perfect)’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 주요 트렌드의 하나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도 ‘육각형 인간’을 뽑았다.
앞서 말한 빈부 격차가 점점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불과 10여 년 전 만 해도 고진감래의 의미로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었던 공부, 학력, 재산, 직장 등이 지금은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돈의 영향으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은 이제 돈 좀 있는 집안의 자녀들 차지가 되고 있다. TV에 나오는 육각형 연예인들의 모습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현실과 괴리가 있음을 알고도 사람들의 눈은 이미 높아졌다.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든 IT 기술 덕분에 SNS의 역할도 우리가 생각지 못한 문제를 만들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게 살고 있는데,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과시적 일상생활의 모습을 SNS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진실이 가려진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을 육각형 인간을 따라 하는 이른바 ‘육각형 인간 놀이’라고 표현한다. 이를테면 멋지게 꾸민 프로필 사진이나 근사한 음식들을 찍어 올리고, 고급스러움이 핵심인 올드머니룩 대열에 낀 것 같은 보여주기를 놀이처럼 한다.
기성세대보다 2030 세대에게 새로운 성공의 기준이 된 육각형 인간의 용어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남들에게 완벽함을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고 타인을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사회적 완벽주의가 일반화되면서, 타고난 자산을 성공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인식에 ‘육각형 인간 놀이’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인다는, 최악의 세대라 불리는 2030 세대들은 경기 침체에 따른 어려운 취업과 매체의 영향으로 남들이 사는 모습에 환상을 갖고, 평가 받는데 있어서도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일반인이 뛰어넘을 수 없는 ‘부’로 인한 사회현상에서 패배주의자적 사고와 특별하고 싶은 자기애적 환경이 결합 된 복잡한 심리의 육각형 인간 놀이일 것이다.
압축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는 그에 따른 압축 성공도 함께하고 있다. 그로 인해 위축감도 있겠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타고난 육각형 인간’이 표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담쌓기를 당해서도 안 되고, 타고난 완벽함을 기준으로 매 순간 타인과 비교하며 서열화되어서도 안 된다. 육각형 인간이 단순한 사회현상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대에 인재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의 성공방식이 붕괴 되었다고 포기하고 놀이만 하면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류의 역사에 이토록 남을 의식한 시대는 없었다.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의 악순환에 빠지지 말고, 육각형 인간을 비교하는 프레임도 만들지 말자. 자본주의의 끝은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국가 간의 무력 전쟁이 아닌, 개인 대 개인의 돈으로 치장된 속앓이의 전쟁일 수 있다. 육각형 인간으로 인한 압박감보다는 자기를 파악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육각형 사고를 키우는 게 우선이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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