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4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3/11 [10:48]

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4

김희찬 | 입력 : 2024/03/11 [10:48]

 

▲ 1915년 팔봉리 지적원도   © 충주신문

 

팔봉 마을에 노수신의 감회는 벌써 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낭만(浪漫)으로 표현할 수 있는 차박(車泊)이 대세다.

 

 

▲ '千里忠州' 회원들이 걷고 있다.  © 충주신문

 

3월 9일(토)에 <千里忠州>의 정기모임으로 수회에서 난양이까지 걸었다. 칼바위 출렁다리에서도, 팔봉교를 건너오면서도 본 팔봉 마을 앞 백사장에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었다. 주말을 맞아 그곳을 찾아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은 사람들이다. 지난 겨울에 지날 때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진을 쳤었는데, 봄이 시작되며 더욱 많은 이들이 봄기운에 이끌려 나온 듯하다.

 

팔봉 마을, 팔봉 백사장, 팔봉서원을 뒤로 하고 팔봉 고샅밭으로 난 길을 걷는다. 팔봉(八峯)이라는 이름처럼, 수주에서 내려오며 팔봉 마을까지 뻗은 산줄기의 봉우리가 여덟 개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여덟 번째 봉우리 아래에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구봉(九峯)으로 호를 지었을 유항(柳恒)은 참으로 제치있고, 호기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팔봉 마을을 지나 봉우리쪽으로 난 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꼭대기로 올라가거나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데, 잠깐 여러 기의 묘를 만난다. 이 마을에 살았던 이들이 묻힌 것일 것이다. 또는 그들은 수백년에 걸쳐 산비알을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을 것이다. 100년 전의 지적원도를 재구해 보면 고샅밭을 일궈온 흔적이 읽힌다.

 

▲ 팔봉 마을에 있었던 소나무  © 충주신문


묘를 중심으로 그럴듯한 소나무가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울을 막 지난 지금, 소나무 아래에 금잔디가 된 떼가 봉긋한 봉분을 덮으며 눈에 띈다. 몇 년 전에 그곳을 처음 지날 때 외따로 서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훤칠한 키에 양 갈래로 가지를 뻗어 올린 멋진 소나무였는데, 지난해에 다시 걸으며 몇 번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때 찍었던 사진을 가지고 찾아봤더니, 소나무가 사라진 것이 확실하다.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집 한 채가 새로 들어섰다. 위치를 몰라 헤맸었는데, 사진 끝자락에 있는 바위를 기준으로 찾을 수 있었다. 소나무는 어디로 팔려갔을까?

 

팔봉 마을 고샅밭은 돌밭이다. 밭 한 뙈기를 일구기 위해 땀 흘렸을 많은 이들의 노력을 생각하며 잠깐 걸어 내려오면 팔봉과 작별하며 신작로로 나선다. 거기에는 상수원보호구역 입간판이 서있다. 곧바로 다리를 하나 만나는데, 싯계교이다. 다리 건너편 오른쪽에는 집 한 채가 있다. 지난 여름 수해의 흔적이 드러난다.

 

▲ 싯계보호구역   © 충주신문

 

강물이 넘쳐 차올랐던 흔적이 여기저기 높다란 나뭇가지에 걸린 마른 풀이며 비닐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싯계교 건너의 강가 집은 용마루가 휘어져 스러져가고 있다. 재건축을 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 물음표를 던지며 다리를 건너 강을 따라 계속 걸으면 싯계마을이라는 마을비와 만난다.

 

싯계!

 

충주 사람들은 향산3리에 있는 횟집을 이용하며 ‘싯계’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그곳의 한자 이름은 ‘세포(細浦)’이다. 충주에서 마을 이름을 세포로 적는 곳이 셋있다. 앙성, 소태, 그리고 여기가 한자로 細浦로 적는 마을이다. 그러나 부르는 것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다. 앙성은 ‘가느개’로, 소태는 ‘셋개’로, 여기는 ‘싯계’로 부른다. 같은 의미로 지어진 이름일 텐데 부르는 것이 각각 달라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浦가 들어간 지명 중에 신니에 내포(內浦)가 있다. 내포는 ‘속개’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浦는 ‘개’라는 의미인데, ‘물가 마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細는 ‘가늘다’는 의미이지만, ‘작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細浦는 ‘물가의 작은 마을’ 정도로 해석되는데, 여기는 ‘계’라고 부르면서 ‘시내 계(溪)’로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팔봉 마을을 지나 노루목까지 흐르는 달천을 ‘싯계’로 인식한다. 하지만 싯계는 마을 이름이다. 싯계마을비 앞을 지나며 잠깐 서서 작대기로 땅바닥에 細浦를 써가며 이러한 예를 들어 설명을 했다.

 

▲ 풍동 동막동  © 충주신문

 

싯계 마을을 지나 걷다보면 강 건너에 집 몇 채가 보인다. 풍동 동막동이다. 마을을 잇는 길은 강가로 뻗어있다. 길 끝에는 강을 건너다니던 나룻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배를 이용하지 않지만, 강가로 뻗은 길이 나룻배를 잡는 손을 뻗친 듯하여 아련하다.

 

동막동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길이 좁아진다. 작년부터 길을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다. 넓힌다기보다는 산비알로 길 하나를 새로 만들고 있다. 향산3리의 횟집들이 늘어선 그곳은 길을 넓히려면 집을 부숴야한다. 그렇게 하면 마을이 사라진다. 그래서 향산3리 뒤로 길을 새로 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팔봉 마을 백사장이 차박의 성지로 각광받고, 노루목에서 달천으로 갈라진 길은 자전거며, 오토바이며 달리는 이들의 성지로 각광받는다.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 각광받으며, 길 중간중간에 휴게소처럼 들어서는 카페가 늘고 있다. 향산3리를 이루고 있는 민물횟집이 과거의 성지였고 힐링 장소였다면, 팔봉 마을까지 이어진 강길은 지금의 성지이며 힐링 장소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하나 자리한다.

 

▲ 홍수 감시탑  © 충주신문

 

그곳은 충주의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충주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1959년부터 충주의 젖줄로 표현될만한 곳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얘기하기도 한다. 물맛이 달다고 해서 ‘달내’라는 이야기도 있고, 수달이 많이 살아서 ‘달천(㺚川)’이라고 하기도 한다. 고려말 조선초에 활동했던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은 물맛 좋기로 충주의 달천을 첫째로 꼽았다. 충주 사람들은 비록 수돗물이지만 달천수를 마시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을 놓고 솔솔 흘러나오는 해제의 목소리는 그래서 딜레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전통의 큰 축에 대한 과감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문제, 그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볼 것이냐, 아니면 생태ㆍ환경적 가치와 역사 문화적 가치를 보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것이냐의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향산3리를 지나고, 달천 수위를 측정하던 감시탑의 계단이 떨어져나간 그곳을 지나고, 몇 그루 키큰 플라타너스 가지 끝에 걸린 지난 여름 수해의 흔적을 지나면, 싯계보호구역이라고 새긴 컴컴한 비석을 만난다. 노루목이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두 곳의 향산정류장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시내버스 시간표에 ‘구도로’를 경유하는 것으로 표시되었으면 향산리 앞으로 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루목 다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올라 자동차전용도로 가에 있는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걷는 시간에 따라서 다르므로 시내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정류장을 선택해야 한다. 길은 계속되지만, 이번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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