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나무에 노랗게 핀 꽃이 나를 수줍게 바라보는 것 같아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도 가만히 그 꽃을 쳐다봤다. 내게 무언의 속삭임을 보낸다. 맞다. 그렇게 또다시 봄이 왔음을 알려 주려는 듯이. 봄의 전령사가 여기저기서 아우성칠 때도 봄이 온줄 몰랐었는데 때늦은 봄날 산책로에서 만난 생강나무가 나를 깨웠다. 그렇지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목련꽃도 어느새 흐드러지게 꽃망울 터뜨리더니 봄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한낮 기온이 여름인가 했는데 며칠 새 온통 만개한 벚꽃이 봄을 짙게 물들였다. 마음은 아직도 얼어붙은 초겨울인데 말이다. 아우성처럼 귓전을 맴도는 봄날의 속삭임을 듣는다는 것이 버겁기만 했던 시간이 이제 조금씩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 꽃샘추위도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 하루가 여삼추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술을 위한 입원이 확정되었다. 수술 일정이 잡혔던 날 아침을 서둘러 먹고 막 출발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술 담당 교수가 직접 전화를 하셨다. 전공의가 없어서 수술할 수 없으니 한 달 후에 일정을 다시 잡아 주겠다고.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다행히 출발 전이라 위로 삼았다. 힘들어도 한 달만 잘 참으면 되겠지 하고 한 달 후 다시 잡힌 일정을 달력에 표기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혹시 전화가 오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출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부터 인산인해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모르지만, 떠나있는 전공의들이 제자리로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라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혹시나? 역시나 담당 교수는 한참을 기록철을 살펴보시더니 아무래도 수술 일정을 다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댔다. 시각을 다투는 목숨을 건 상황이 아닌 것에 또 감사하면서 2주 후로 다시 잡힌 일정이 하필 만우절이다. 속설처럼 행여 거짓말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곁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속이 뒤집혀 온다.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까 표현도 못 하고 매일 힘든 일을 하면서 버티는 모습이 역력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이럴 땐 분명 아프면 해답이 없으니 죽음을 기다리는 일만 남는 것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학수고대한 그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입원준비물을 다시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행여 되돌아오는 일이 없겠지. 다짐하면서 입원하라는 메시지가 연신 카톡을 통해 들어왔다. 좋은 세상이다. 이 좋은 세상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연신 병원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를 확인 또 확인해 본다. 선이라도 보러 가는 기분이다. 설레고 두려움 가득 안고 마지막으로 입원병실안내까지 받았다.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에 기쁘기도 했다. 번호표를 받고 마냥 기다려야 했었던 방식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시스템으로 이뤄지는 입원 절차는 간편했다. 병실 입소까지 마치고 입원복을 갈아입고서야 실감이 났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젠 안심이다. 담당 간호사가 와서 입원실 사용 안내 수술 안내 등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 저녁 식사 후 금식 내일 첫 타임 수술이란다. 만우절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이튿날 이른 시간 무사하게 성공리에 수술을 끝냈다. 이제야 맘이 편해졌다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있다고 그 맘 누가 알까? 뭐니 뭐니 해도 건강관리 스스로 해야 함을 깨닫는다. 또다시 이런 우발사건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봄을 봄답게 누리지 못했던 봄이 빠르게 간다. 지정의 담당의가 와서 힘든 시간 잘 버티고 기다려 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하다며 위로해 주심에 그동안 막혔던 응어리가 싹 가셨다. 일상으로 돌아와 미뤄왔던 일에 바쁜 하루가 연속이다. 이 또한 우리 일상의 행복 시작이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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