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충주 더욱 특색 있게 다시 태어나야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24/04/11 [11:37]

문화도시 충주 더욱 특색 있게 다시 태어나야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입력 : 2024/04/11 [11:37]

▲ 이규홍 대표이사     ©

지난해 12월 충주시가 문화도시로 선정되면서 충주문화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가 주요 관건으로 관, 학, 민이 똘똘 뭉쳐 문화도시 충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충주는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며 신라에 병합된 가야가 부흥 운동을 펼치자 신라가 이를 막고자 펼친 사민정책에 의해 충주지역으로 이주한 가야 사람들에 의해 가야 문화까지 덧붙여져 4개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충주는 고려 때부터 수운의 교통수단으로 한강의 중심적 항구 역할을 했던 목계나루와 국가의 세수를 거둬 쌓았던 가흥창 등으로 나라의 중추적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가 어려울 때에는 국가를 지켜낸 호국 정신이 투철했던 곳으로 금나라 침입 시 김취려 장군과 최원세 장군이 박달현(지금의 충주와 제천 경계지역인 백운 일대)에서 금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고 몽고의 침입 시 충주는 몽고의 9번의 침입 중 8번을 승리하는 정신력이 대단했던 곳이다.

 

충렬왕 13년인 1230년에는 합단이 침입하였으나 충주산성별감이 이를 격퇴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신립 장군이 탄금벌에 배수진을 치고 왜구를 막다 장렬히 전사했고, 6.25 한국 전쟁에서는 최초로 신니 동락에서 적 15사단 48연대를 크게 격파하고 노획한 소련제 무기 제공으로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당위성을 만들어 유엔군 참전으로 인해 대반전을 이루어 풍전등화 상태에 놓인 우리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또한 4.19혁명당시에도 전국에서 3번째로 학생 항쟁을 이끌어내 4.19혁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선도적 역할을 하는 등 충주는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일에 직접 나서서 충주의 기개를 드높였던 곳이다. 호국의 정신이 매우 투철했다는 것이다.

 

충주는 역사 속에서 항상 중심에 서서 큰일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관계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의 제 2의 도시로 문화의 중심에 서 있었고 고려 때는 수운 물류를 연결하는 수운 문화, 조선에서는 선비문화가 컸던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양질의 철로 인한 제철문화, 목계나루에 모였던 보부상 문화 등 중심적 문화들이 모여 중원문화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조선 정조시대에 조사된 호구 총서에서는 충주인구가 전국에서 4번째로 많았다는 기록이 있어 규모에 있어서도 매우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이 고장에서 피어난 문화의 다양성은 앞으로 우리가 발굴하고 찾아내야 할 보석 같은 유산들이다.

 

이러한 속에서 충주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된 것은 역사속 문화들을 더 빛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충주시민들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미래의 자산이다. 또한 우리가 남길 유산이다. 이번 문화도시로의 선정은 역사적으로 중심의 문화, 우륵의 가야금 문화, 중원문화 등 많은 문화 등을 보유하고 있는 충주가 창조적 문화로 다시 깨어나라는 우리의 지상과제로 던져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유한 많은 역사적 문화자산에서 우리만의 특색 있는 문화로 재정립되어 문화로 강한 도시, 문화를 생활화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번 문화도시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특색 있는 문화로 인해 국토 균형 발전의 한 축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충주는 할 수 있다.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굳건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이루어 낸 충주다.

 

유인촌 장관의 방문으로 기대감이 높아진 우리는 새로운 정신으로 더욱 새롭게 태어나 오랜 침체의 늪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옛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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