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

신옥주 | 기사입력 2024/05/21 [10:06]

나, 너, 우리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

신옥주 | 입력 : 2024/05/21 [10:06]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이번 독서 모임은 우리가 어떤 인간을 전형적 인간 군상의 카테고리에 넣는지, 평범이란 무엇인지 한번쯤 되짚어보게 만드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미국 해안가 소도시에 사는데, 우리의 옛 시골처럼 각 가정의 문제를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며 누구네 집 아이가 몇 살이고 어떤 성장을 하는지 알게 되는 시골 소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편 13개 이야기가 마치 하나하나 다른 소설을 읽는 느낌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구조로 올리브의 신혼에서 노년까지, 인물들도 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인물들 모두 개성적이면서도 마치 옆집 이웃인 듯 생생하게 묘사되어 금방 페이지가 넘어갔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생소하지만,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감수성 속에 폭발적으로 직설적인 문체가 드문드문 나타나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주인공 올리브는 수학교사로 재직했으며, 단편마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수학교사가 전에 이런 말을 했지’ 하는 식으로 언급되어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도 종종 등장하는데 이게 또 이 책의 묘미다. 내 나이가 중년이 되면서 나만 있다고 ‘사는 것같이 사는 삶’이 아니라 나와 너와 다양한 우리가 모여 내 인생을 이루고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오늘 독서 모임에서 주인공 성격이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 조심스럽기도 했다. 나의 단점을 확대해 투영하면 그녀가 될 것 같아 솔직히 조금 두렵고 많이 반성하며 읽었다. 주인공 올리브 키터리지는 독립적이고 직설적이며 자존심이 세다. 아주 가끔 약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받는 나쁜 습관도 있지만,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이다. 보통 주인공은 착하고 선량하며 남을 위한 행동을 자주 하는데, 올리브는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모든 생활이 본인 위주로 이루어져야 만족한다. 이 점에서도 나와 비슷해 또 반성하게 되네. 소설에서 그녀는 스스로 농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는 그녀를 카우보이 느낌이라고 말하며, 올리브의 남편 헨리가 그녀를 정말 사랑해서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것이라 말한다.

 

올리브와 헨리는 외아들 크리스토퍼를 위해 자택 가까이에 정성을 다해 지은 집에서 아들의 결혼식 피로연을 연다. 부부는 너무나 기쁘게 준비하고 정성을 다했는데 며느리를 맞는 올리브는 마음이 조금 불안하고 울렁거려 홀로 피로연 자리를 빠져나와 아들 부부의 방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긴다. 족부의학 전문의인 아들이 뉴욕의 집안 좋고 똑똑한 의학박사인 수잔에게 간택되다시피 급하게 결혼한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매사에 잘난 체하는 며느리 수잔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들의 지난 삶을 다 아는 듯 주절대고 올리브의 드레스를 품평하고 아들이 힘들게 살았다고 친구들에게 떠벌린다. 그래서 작은 복수를 하는 올리브에게 공감하는 회원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회원들이 열띤 토론을 했다. 이게 그렇게 토론할 일인가 싶게 토론하다 우리는 다같이 한참을 웃었다.

 

올리브와 헨리는 둘 다 직장에서 은퇴해 이제 막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신혼인 아들 부부와 태어날 손주들을 생각하며 남은 날들을 준비하는 부부에게 갑자기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겠다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너무 놀라고 당황하지만, 시대가 변해 부모와 사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아들을 보내고 허전해하는 올리브에게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아들은 또다시 이혼했다는 말을 심드렁하게 전화로 전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식상한 말로 위로하기엔 나도 나이가 들어서 이 부분은 좀 불편했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도 올리브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기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며 해주고 싶어도 아들이 다가옴을 거부하여 어쩔 줄 몰라 마음을 삭이며 새로운 삶에 적응하던 어느 날 이번에는 남편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칠십 대가 되었으니 마음의 준비가 있을 법도 하지만 올리브와 헨리는 생각하지도 못한 재앙을 만난 것이다. 헨리는 눈도 멀고 간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요양원으로 가고 올리브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살다 보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은 언제나 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마음이 막막하고 먹먹해진다.

 

헨리를 보내고 노년의 길목에 들어선 올리브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다음과 같이 넋두리한다. “중년의 그들, 전성기의 그들. 그들은 그 순간을 조용히 기뻐할 줄 알았을까? 필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정작 인생을 살아갈 때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지금! 현재를 소중하게, 현재를 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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