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벗기다

김영희 | 기사입력 2024/06/10 [11:07]

나를 벗기다

김영희 | 입력 : 2024/06/10 [11:07]

▲ 김영희 시인     ©

진한 밤꽃 향기가 유월을 피아노 친다.

 

보리는 통통하게 여물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 보리밭가에 오디도 검붉게 익어서 떨어진다. 산과 들은 푸르러, 저마다의 향기로 꽃을 피운다. 들꽃은 왜이리도 향기로운가. 이 모든 향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산천은 방초를 입고 한창인데, 푸른 숲속에 홀로 앉아 나를 잠시 돌아본다.

 

세상에 태어나 첫발을 내딛던 첫돌부터 지금까지 건강한 내가 고마워진다.

 

나는 마음의 옷을 늘 입기만 하고 살아왔다. 귀가 순해지는 나이에 들어서는 까닭일까. 이제는 나를 벗기고 싶다.

 

2년전 가을이었다. 늦은 오후 집으로 가는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한울학교 초, 중, 고 검정고시 전액무료'라는 문구였다. 나는 플래카드에 있는 학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런데 입력하는 과정에서 번호가 찍혔는지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그곳은 한울 검정고시 학교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교현초 근처에 있는 한울학교 앞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그후 세번째 간 날은 학교 문이 열려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았다. 1층 교실은 닫혀있어서 2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교실이 있는 복도에서 한 선생님과 마주쳤다. 선생님은 반가워하며 교무실로 안내했다. 교무실에서 교장선생님의 검정고시 안내를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교장선생님께 나는 대뜸 '한글은 뗐습니다'라고 했다. 고성규 교장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1년 동안 초, 중, 고 합격해서 대학까지 가라고 하는데 왠지 꿈결처럼 들렸다. 교장선생님은 격려와 용기를 주며 응원했다. 학교에 들어오기 많이 어려웠던 점 안다고 하며 적극 권유하셨다.

 

늦게라도 알았으니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는 용기도 생겼다.

 

그렇게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초졸 원서에는 제적증명이 필요했다. 난생 처음으로 뗀 제적증명에는 주덕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딱 220일 다닌 걸로 돼 있었다. 2학년 1학기 중퇴 이유는 부모님의 종교 때문이었다. 제적 증명에 안식일 교라고 돼 있는 부모님의 종교적 이유로 학교를 그만 두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여느집 못지 않았다. 평생 험한 표현 한 번 않으신 자상한 부모님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없고, 세상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학교를 중단한 후, 아침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꽃하고 놀다가 성경책을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혼자 성경책을 읽다가, 하나님 하나님은 어디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리고 예수님 ! 예수님은 우리가족 천국으로 언제 데려가실건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다 하늘 가는 꿈을 여러번 꾸기도 하였다.

 

사춘기부터는 성경책 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었다. 다양한 음악도 감상했다. 앞동산 뒷동산 새들은 늘 우리집이 궁금한 듯 들락거리며 지저귀었다. 집에만 있으니 누구와 경쟁하거나 다투는 일도 없었다.

 

초졸 검정고시가 있다는 것을 늦게 알고 난 후에는 헛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검정고시 초졸 공부는 학교에서 주는 교재로 혼자 공부했다. 2023년 4월 초졸검정고시 합격 후, 같은 해 8월에는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올 4월에는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검정고시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검정고시를 치르고나니 후련하기는 하다.

 

이제는 대학이 남아있어 고심중이다. 학력 없이 살아왔지만 학력 때문에 상처 입은 적은 없었다ㆍ그리고 학력으로 크게 걸림돌이 돼 본적도 없다.

 

그동안 나는 나를 감히 대기만성형이라고 믿는 게 힘이 되었다.

 

글을 읽을 줄 알고 쓸줄 알고 이해 할 수 있으면 못할 것이 무엇인가 자문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연구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인생을 거꾸로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게 된다.

 

내가 나를 조금 벗고나니 마음이 구름 벗겨지듯 가벼워지는 것은 왜일까.

 

비움이 채움을 부르고 채움이 비움을 부르는 것처럼 나의 비움 속에는 또 어떤 것들이 채워질까.

 

묵은 마음 한겹 벗은 오늘, 단오를 맞아 한 번쯤 창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를 뛰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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