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리고 친정 언니

남상희 | 기사입력 2024/08/12 [09:23]

엄마 그리고 친정 언니

남상희 | 입력 : 2024/08/12 [09:23]

▲ 남상희 시인     ©

늘 그랬던 것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친정 엄마를 만나러 집을 나선다. 요즘 날씨는 수시로 변해서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해가 났다 종잡을 수가 없다. 해서 그날의 날씨 정보를 보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을 정하기로 했다.

 

농사일이 많다 보니 언제나 바빠서 여유시간이 없으므로 휴일이 있다면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엔 엄마도 만나러 가고, 가끔은 재미있는 영화도 보러 간다.

 

한여름 불볕더위가 제일 강할 땐 빨갛게 익은 고추도 수확해야 하고 참깨도 수확해야 한다. 웃자란 들깨 순도 쳐야 하고 여름날에도 할 일이 많다.

 

연신 재난 문자가 들어온다.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하고 충분한 물 섭취도 권장하고 있다. 무리하다 보면 잘못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시기를 놓치면 농작물은 제때 수확을 할 수 없는 것이 농사일이다. 일손을 놓고 쉬는 게 당연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상이 가끔은 힘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준 그것만큼 실하게 자라는 곡식들을 보면 위안을 받는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엔 밭에서 챙겨 온 채소들이 수북하다. 시간 반 달려가다 보면 가는 길에 전화가 열두 번도 더 온다.

 

‘어디쯤 왔니? 지금은 어디야? 다 와 가니?’ 등등.

 

언제나 그랬듯이 도착할 때까지 전화로 확인 또 확인하신다. 걱정 반 반가움 반 그리고 며칠 사이 서로가 몰랐던 일상 이야기가 궁금하신가 보다. 도착하면 젤 먼저 식탁 위에 각종 채소를 하나하나 얹어 놓으면 엄마가 젤 좋아하신다. 그래 이건 내가 좋아하는 가지구나. 몇 개 내려놓고 나머지는 언니네 나눠줘야 한다며 몇 개 안 되는 수량을 세고 또 세신다. 여름 상추는 기르기 힘든데 어떻게 키웠냐며 또 이건 내가 젤 좋아하는 거니까 조금만 나눠줘야겠다 하신다. 선선해야 잘 달린다며 애호박도 반기신다. 귀한 거라며 또 애호박도 엄마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날이 엄마는 추억을 떠올리시며 당신 젊어 시절 농사지으시던 왕년의 나 때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신다.

 

엄마 가까이에 사시는 언니네랑 그리고 큰애도 곁에 있어서 두루두루 만날 수 있어 참 좋다. 큰애 집에 들러서 손주들 얼굴만 보고, 언니네로 채소를 챙겨가서 내려놓으면 언니 손은 뚝딱 요술 방망이다. 완성품으로 거듭난 반찬을 농사일에 바빠서 할 시간 없을 거라며 또 챙겨주신다. 엄마를 만나러 갈 때 챙겨간 것보다 돌아올 때는 더 많은 것들을 챙겨온다. 해서 맨날 비우라고 하는가 보다. 비우면 비울수록 더 많은 것들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요즘 들어와서 자주 깨닫는다.

 

우리의 마음도 비우고 정말 눈에 보이는 물욕도 버려야 함을 알면서 어느 순간 까맣게 잊고 눈에 보이는 온갖 것에 정신을 빼앗기고 산다. TV 앞에 앉으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러움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허구성임을 알면서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무리한 지출을 한다. 이미 때는 늦었고 며칠 후 도착한 상품을 보고 후회를 한다. 전에 친정엄마가 그랬듯이 요즘은 나도 친정엄마를 닮아간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늘 말씀하시던 엄마는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신다. 솜씨 좋고 뭐든 무서운 것 없다며 생활력 강하셨던 엄마다. 그랬던 엄마가 이젠 자식들의 보호가 필요해졌다.

 

유치원 같은 노치원에 처음엔 아니 가신다고 하시더니 적응을 잘하셨는지 말씀이 없으시다. 맘이 짠하다. 엄마는 아침 8시쯤 가셨다가 오후 5시면 귀가하신다. 세끼를 주간 보호 센터에서 드시고 오셔서 평일엔 엄마 집에선 취사를 하지 않고 과일이랑 차만 마실 수 있다.

 

가깝게 엄마를 모셔놓고 수시로 엄마를 보살펴주시는 언니가 있어서 안심도 되고 든든하고 고맙다. 어쩌다 틈내어 들리면 엄마는 매일 곁에서 돌봐주는 언니보다 나를 먼저 챙길 때면 미안한 맘이 가득하다. 그래서 자주 엄마를 만나러 가려고 노력을 해본다. 주중에 비가 매일 한 번씩은 내려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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