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남상희 | 기사입력 2024/09/13 [10:25]

일상

남상희 | 입력 : 2024/09/13 [10:25]

▲ 남상희 시인     ©

새벽이 열리고 있다. 밝아지려면 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다. 어둑한 들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다 보면 땅콩밭이 나온다. 새벽바람이 온몸을 스친다. 수확 시기가 이르지만, 땅콩을 캐기로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매일 밤 땅콩을 조금씩 챙겨가는 짐승 때문이다.

 

산 아래 밭 농작물은 제때 수확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삼일 후면 제대로 익은 옥수수 맛을 보려나 했는데 한발 앞서 옥수수밭에도 멧돼지가 다녀갔다. 울타리도 소용없다. 더럭 겁도 났다. 멧돼지랑 만나지 않았으니 참 다행스럽다. 다음 해에는 같은 작물을 심으면 안 된다. 한번 다녀간 짐승은 그 맛을 알기에 또 내려오기 때문이다. 힘들여 키워놓은 농작물은 수확 철이 가까워지면 산짐승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도 지난 지 오래다. 한 달이 넘도록 열대야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작물 때문에 난리다. 지하수라도 있으면 밤낮으로 물을 대느라 바쁘고, 지하수 없는 밭 농작물은 온통 시들고 타들어 가고 있다. 어느 해 보다 강하고 뜨거운 햇살 때문에 한낮에는 바깥 활동은 할 수가 없다. 가뭄 속에서도 극성스럽게 우후죽순 커가는 잡초들의 생명력에 저절로 감탄도 난다. 풀 약도 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예초기로 매일 깎고 또 깎아도 풀과의 전쟁은 끝이 없다. 힘들여 공들여 키운 농작물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 속상할 때도 있다.

 

밭고랑 사이를 고라니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제는 사람도 우습게 보이나 보다. 열심히 어린 열무 싹 배춧잎을 배부르도록 싹둑 먹어 치우고 나서야 어슬렁거리며 밭둑을 넘어간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라니 뒤통수에다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도 질러본다. 다음에 만나면 목숨줄 내놓아야 한다며 으름장도 놓아 본다. 다시는 못 들어오게 뚫고 나간 울타리 망을 한 겹 두 겹 보수해 보기도 한다.

 

뻘뻘 땀은 온몸을 적시고 냄새는 푹푹 코를 찌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이런 일상도 시간 보내기에 딱 좋다. 힘들어도 하루 일상에 그려지는 각종 일거리가 보는 시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지만 내가 그리는 노후의 미래상은 그리 나쁘지가 않다. 봄날 씨앗을 뿌릴 때는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세 개 정도를 심어야 한다는 선조들의 지혜에 따라 심을 때가 종종 있다.

 

전깃줄 앉아서 내려다보는 새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고랑 고랑 비닐 씌워놓은 두둑 속에는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모를 쥐구멍 때문에 발아되지 않는 씨앗도 다반사다. 해서 여분으로 모종을 별도로 키워놓았다가 빈 곳에 이식하기도 한다. 그렇게 키워낸 땅콩을 며칠 전부터 서리를 당하기 시작했다. 오소린지 두더쥔지 아님 쥐일지도 모를 녀석들에게 며칠 더 내버려 뒀다간 씨도 건지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이래서 가을날의 일상 중 한 가지 일은 해결이 된 셈이다. 견과류 중 제일 흔하게 맛으로 접할 수 있는 땅콩 사랑도 있다.

 

여름날 콩국에도 감초처럼 꼭 들어가야 제맛이다. 심심풀이 땅콩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일 년 내내 밥상 한편에 올려놓고 먹을 수 있어 참 좋다. 많지 않은 수확량을 챙겨서 나눠 먹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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