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노랗게 오는가, 빨갛게 오는가!
달력에 잔뜩 빨갛게 물들어 있던 추석을 알리는 숫자는, 보기만 해도 설렘과 분주함을 주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이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 너무나 뜨거웠던 이상 기온의 추석을 훌쩍 지나 이제야 낮 기온이 서늘한 가을이 문턱에 온 것 같다.
슈퍼문으로 아주 커다랗고 밝았던 한가위 달을 보며 추석에 모였던 조카들이 장난스레 큰 소리로 소원을 빌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취업난에 시달리는 취준생과 지난해만 해도 용돈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던 대학 졸업을 앞둔 조카도 이번엔 꽤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명절을 쇠러 온 것 같다.
우리나라 서인국 심리학 교수가 말하길 ‘행복은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가 쫓는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는 노래를 하는 것 같다. 돈이 아주 많고, 너무너무 멋지거나 예쁜 사람, 최고의 학벌과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엔 참 행복해 보이는데, 실상 그들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수시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자잘한 행복을 느끼며 활짝 핀 미소를 짓는다.
행복은 그 강도의 세기보다 얼마나 자주 느끼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와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서 교수는 말한다. 이를테면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운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 앉아서 생각만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 좋은 느낌을 경험하러 나서는 것이 먼저 할 일임을 생각하니, 실로 불편한 관계, 불편한 자리가 주는 기분 좋지 않은 것이 불행이라 말하긴 과하지만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한국 문화에서 유독 특별한 것이 있다면 ‘정’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웃을 살피고, 어려울 때 도와주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우리의 정문화.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사라진 듯한 문화이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나 이웃에게 관심이 많고 나아가 간섭까지 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개인 생활과 개인 생각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실례로 여긴다. 그렇지만 아직도 연세가 많은 분일수록 가족뿐 아니라 이웃의 개인 생활에 관여하려 드는 것을 종종 겪거나 목격할 수 있다.
추석을 비롯해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는 아마도 소위 취준생들에게는 꽤 부담 가는 자리일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명절날 질문하면 안 되는 것’에 결혼 여부의 질문과 함께 취업에 관한 질문이 포함되어있음을 보았다.
당장 취업이 안 되었다거나 결혼을 안 했다고 불행하거나 비참한 것은 아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겪는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먹고 사는 건 맞지만, 안 그래도 심적으로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너 그래서 언제 자리 잡고, 결혼하고 집 사서 행복하게 살래?’라는 뉘앙스는 풍기지 말자.
행복은 성적순도, 부자 순도, 학벌순도 아님을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을 만나고, 길가에 살랑대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를 마주치는 그 발걸음도 모두 행복임을 놓치지 말자.
한 보따리 격려와 덕담을 안고 돌아간 조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길 바라며, 앞으로도 가족 친지 모임에 부담 없이 나타나 주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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