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은 모든 분야의 한국 여성 작가들에게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바로 여류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온 날이기 때문이다. 남자들 대부분 인식하지도 않는 ‘여류’라는 두 글자를 이름 앞에서 발견할 때의 심정을 그들은 알까. 언제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뒤에 있어야 했던 오랜 역사를 과연 그들은 알고 있는가. 많은 여성 문인들의 꿈을 이루어준 한강, 그녀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 근대화를 이끈 문인을 말하라면 이광수니 이상이니, 혹은 청록파니 하는 남성 문인들 이름은 줄줄이 읊을 수 있는데, 여성 문인들은 언뜻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 독서회라고 많은 책을 접했다면서도 여성 문인들은 몇몇 손꼽을 정도로 빈약하다. 1917년에 소설 ‘의심의 소녀’를 발표했던 김명순 작가, 한국 최초의 여성 화가인 나혜석은 1918년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여류 문인이자 승려인 김일엽은 1920년에 소설 ‘경희’를 발표했다. 이광수가 1917년 발표한 ‘무정’을 한국 최초 근대 소설로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 문학의 역사를 바로 알고 다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문인협회는 “1920~30년대 한국 근대문학에서 여성 문인들은 용기가 필요했다. 김일엽, 나혜석, 김명순 등 1세대 여성 문인은 당시 남성 문학과 비교해 조금도 떨어질 게 없었음에도 그들에게 가해진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나쁘게 몰아갔다. 미친 여자. 행려병자 등 실패한 인생으로 폄하했고 깎아내렸다. 당시 문학사는 작가의 삶과 문학을 혼동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며 그들의 작품을 재조명하길 바란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환호만 있음이 아니라 또 다른 흥분이 감돌았고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세상을 뒤집어놓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여성이 가진 문학적 소양이 인정받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누가 인정해주고 아니고를 떠나서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리를 수백 년이나 교육받고 자란 문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주는 그런 것이다. 나는 내가 감히 한강 작가의 글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다만 그의 행보와 우리나라 여성들을 별개로 볼 수 없는 현실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는 혹독한 정치적 탄압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5·18을 다룬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2014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 3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5·18, 북한, 개성공단, 마르크스, 정치인 등의 키워드가 있는 책 다수가 심사에서 탈락했다며 특히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책에 줄을 쳐가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검사해, 사실상 사전 검열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너무 부당한 처사였다. 게다가 한강 작가는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박영수 특검팀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소설가 한강의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강 작가의 도서가 정부가 주관하는 우수도서 선정이나 보급 사업에서 제외됐던 이유가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글로 쓰인 작품이라는 이유도 아니고, 군사정권 체제에서의 정치적 강압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휘하에서 이런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나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 자체도 영광이지만, 자기들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권력이 특정 작가를 탄압하고 압박을 해도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보여주는 최고의 한 장면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의 상처를 마주 보고 인간 삶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으며, 이후 전 세계 서점마다 특별매대를 설치해 작가의 책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매번 다른 나라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읽으며 그들의 고통을 알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읽고 우리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 점이 한강 작가가 만든 기적이다. 작가의 수상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홈피에 게재돼 있는 모든 이미지를 무단도용, 사용이 발각되는 즉시 민형사상 책임을 받게 됩니다. ※ 외부 기고는 충주신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관련기사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