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을 꿈꾸는 남자

남상희 | 기사입력 2024/10/25 [14:19]

차박을 꿈꾸는 남자

남상희 | 입력 : 2024/10/25 [14:19]

▲ 남상희 시인     ©

가을비가 장마철 비처럼 무섭게 내렸다. 가을날엔 하루하루가 바쁘다. 가을걷이하는 사람이면 일손이 모자라 동동 구르며 하루를 보낸다. 풍성했던 가을 들판도 조금씩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단풍의 계절이라 그런지 상춘객들의 감탄 소리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더 추워지기 전 일손 놓고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것도 괜찮은 어느 날 매일 차박을 꿈꾸던 남자의 소원하던 일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틀 내내 장대비가 한바탕 지나간 자리 밭고랑에 난리가 났다. 일 년 내내 공들여 키워낸 들깨 수확이 코앞에 놓였는데 한마디로 쑥대밭이 됐다. 밭둑에 가지런히 베어놓은 들깨가 바람에 날아가고 장대비에 얻어맞아 들깨 알들이 고랑에 수북하다. 올 들깨 수확은 말 그대로 반타작이다. 자연의 섭리를 그래서 무시할 수가 없나 보다. 손으로 직접 들깨를 털었던 옛날에 비해 장비가 나날이 좋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기계 사용료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아무 때나 빌릴 수 없으니 예약해야 한다. 예약한 날에 비가 오면 낭패다. 이젠 요령이 생겨서 예약을 한 번만 잡는 게 아니라 두 번 나눠서 예약한다. 다행히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하나를 취소하면 된다.

 

들깨 털기 전 며칠의 여유가 생겨 우린 여행 준비를 하느라 신이 났다. 언제나 여행하면 온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단둘이서 떠나는 여행은 참 오랜만이다. 여행하면 숙박도 정해야 하고 그곳에서의 맛집도 찾아봐야 하고 할 일이 참 많다. 이번 여행은 그냥 간단하게 무상무념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 냉동고 냉장고에 쌓인 음식 비우기 작전을 시작했다. 숙박도 정할 필요 없고 맛집도 찾을 필요가 없다. 숙박을 위해 준비할 것이 있다면 아이들 어릴 적 여행 다닐 때 썼던 텐트 덮개 챙기고, 야행 산행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 침낭도 챙겼다. 차 안에서 하룻밤 자려면 등 배길까 싶어 푹신한 자리도 챙기고 얇은 담요 하나도 챙겼다. 차 안에 이것저것 챙기니 한 짐 가득하다. 하루 떠나는 여행인데 챙길 것이 참 많다. 그래서 여태껏 엄두도 못 냈던 것은 아니었나 뒤돌아본다.

 

이른 아침을 먹고 쟁여두었던 먹거리를 챙겼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알 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려면 묵은지가 제격이다. 라면도 먹다 남은 찬밥도 챙기고, 설에 먹다 남은 떡가래도 챙겼다. 오가며 간식으로 먹기 좋은 군고구마도 따뜻한 물이랑 커피도 여행 중에 꼭 필요한 감초다.

 

목적지도 없이 떠나는 자유여행이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두어 시간 걸려 도착했다. 굽이굽이 옛길로 오는 길에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잘 뚫어진 도로를 비켜 옛 모습이 가득한 옛길은 어쩌면 오랜 세월 우리가 살아온 날들처럼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조심스럽게 주차를 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처럼 차박을 꿈꾸는 젊은이도 눈에 보인다. 짐을 풀어놓고 이른 저녁을 챙길 때쯤 옆에 한 가족이 터전을 잡으며 눈인사를 보낸다. 참으로 오랜만에 새롭게 만나는 이웃이다. 핵가족처럼 보였다. 초등저학년으로 보인다. 저녁을 기다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될 것으로 보인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는 시장을 다니러 간다. 한참 만에 돌아온 이웃집도 모닥불을 피웠다. 멋쩍은 눈인사가 오가다 먼저 안부를 챙기고 자연스럽게 오래된 이웃사촌이 되었다. 간식으로 챙겨간 군고구마를 건넸다. 은박지로 고구마를 감싸서 불에 얹어 놓고 데워먹으려는 모습이 정겹게 보였다. 한사람 앞에 하나씩 챙겨주었더니 금방 쌀과자를 한 봉지 건넨다. 오가는 물물교환이 금방 이뤄졌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가만히 있어도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웃이 되었다. 그들도 틈새 시간에 차박을 잘 다닌다며 좋은 자리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자는 제의도 받았다. 시간이 되면 달려오겠노라고. 시작이 반이라고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여행의 시작이 왠지 또 올 것 같은 희망이 다녀온 뒤 그날이 자꾸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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