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막귀

박상옥 | 기사입력 2016/10/25 [15:49]

가막귀

박상옥 | 입력 : 2016/10/25 [15:49]
가막귀
 
             이희순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를 잃어버린 검은 도포의 차사가 안개에 젖은 시골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에 앉아 아버지를 지목하던 그날도 완만하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천천히 날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던 날짐승의 변고는 지능적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배고픈 그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짐승의 살점으로 허기를 채우기에 정신이 없는 무리들. 힐긋 보는 눈빛에 얼어붙은 몸은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다가간다. 자청색을 띤 흑색의 모습. 모처럼의 만찬을 방해한 죄로, 북천으로 데리고 가려는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오르고 있다. 쪽빛 하늘을 검은빛으로 물들이며 날아오르던 아버지 장례식 그 날처럼. 미친 듯이 페달을 밟는다.
 
*이희순(1973~ ): 문경출생. 문향회원. 동서문학맥심상(2016). 충주에서 ‘시가있는 마을회관’ 회원으로서 한국사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다.
 
▲ 박상옥 <시인>     ©
가막귀는 가마리라고도 하는 까마귀의 옛말이다. 제주도에 전승되는 노래 <처사본풀이>를 보면,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가막귀를 시켜 인간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는데, 마을에 이르러 이것을 잃어버리고 마음대로 떠들어서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이 뒤바뀌었으니, 불길한 새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우리의 태양신화라고 할 수 있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주인공 이름이 가막귀라 하였고, 중국의 태양신화나 고구려신화에도 세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三足烏)는 등장한다. 따라서 까마귀는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령스러운 능력과 죽음이나 질병을 암시하는 불길함의 상징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우리의 정서에 자리한다.쪽빛 하늘을 검은빛으로 물들이며 날아오르던 아버지 장례식 그 날처럼 미친 듯이 패달을 밟게 만든 가막귀는 아버지와 저승과 시인을 연결시킨다. 상징과 영혼과 현장성을 동시에 드러낸 이 시가 동서문학 맥심상(2016.10)을 수상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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