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막귀
이희순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를 잃어버린 검은 도포의 차사가 안개에 젖은 시골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600년 수령의 느티나무에 앉아 아버지를 지목하던 그날도 완만하게 날개를 펄럭거리며 천천히 날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던 날짐승의 변고는 지능적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배고픈 그들의 먹이가 되고 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짐승의 살점으로 허기를 채우기에 정신이 없는 무리들. 힐긋 보는 눈빛에 얼어붙은 몸은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다가간다. 자청색을 띤 흑색의 모습. 모처럼의 만찬을 방해한 죄로, 북천으로 데리고 가려는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오르고 있다. 쪽빛 하늘을 검은빛으로 물들이며 날아오르던 아버지 장례식 그 날처럼. 미친 듯이 페달을 밟는다. *이희순(1973~ ): 문경출생. 문향회원. 동서문학맥심상(2016). 충주에서 ‘시가있는 마을회관’ 회원으로서 한국사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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