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느림보

남상희 | 기사입력 2017/11/28 [09:02]

사랑은 느림보

남상희 | 입력 : 2017/11/28 [09:02]
▲ 남상희 시인     ©운영자

사랑은 느리게 오는 것이 좋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좀 느림보처럼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쉽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듯이 또한 쉽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중에 사랑이란 것이 참 오묘하다.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기만 한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사랑의 풍경이 다양하다. 제삼자가 볼 때는 사랑이 아닌데 그들만의 사이에서는 사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랑엔 여러 가지 색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각종 색채로 가려진 사랑은 이웃이 되기도 하고 핏줄 섞인 가족이 되기도 하나보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하늘엔 먹구름 가득해서 첫눈이라도 내리려나. 했다. 밤새 소리 없이 온대지를 하얗게 수놓은 첫눈이 새벽을 여는 내게 겨울사랑 으로 다가왔다. 첫눈이 내리면 공원에서 만나자던 어릴 적 죽마고우가 문득 생각났다. 결혼을 하고서도 늘 그 약속은 잊지 말자고 해마다 첫눈이 내리면 안부를 묻고 한다. 서로 사는 게 바쁜 것인지 그 약속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지만 주고받는 소식은 언제나 한결 같다. 세월 속에 무뎌진 감정도 그 순간만은 소녀로 돌아가곤 한다. 손 전화에 첫눈 맞지? 라고 문자가 왔다. 새벽에 창문너머 소복하게 쌓인 눈을 사진으로 담아둔 것을 불러와 친구에게 보내면서 첫눈 맞기는 한데 밤새 와서 약속을 지킬 수 없었으니 무효라고 했다. 진하게 전해지고 있는 친구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볼 수는 없어도 짧은 문자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함께 삶을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런 친구가 곁에 있어서 참 좋다.

얼마 전에 세종에 거주하는 조카가 해마다 이맘쯤 바이올린 연주회를 여는데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했는데 마침 주말이라 기회가 되어 다녀오게 되었다. 부모형제들의 연고지가 한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지라 한자리에 모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애경사라는 이름하에 만나게 되는 그런 현실 앞에 다행히도 연주회를 기회로 만날 수 있었다. 조카들 손주들 각자 사는 연고지가 다르니 바쁜 일정 얼굴만 보고 또 아쉬움만 남기고 뿔뿔이 각자의 안식처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태어 난지 백일 조금지난 손주를 데리고 딸애가 연주회에 참석을 했다. 이렇게라도 손주와 할머니 짧은 상봉을 위한 배려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래도 막상 만나보니 반가움 반 걱정 반이다. 천만다행히도 바이올린 연주소리를 감상이라도 하듯 보채지 않고 얌전한 모습이 앙증맞기만 했다. 마음 같아선 딸애를 따라가 손주 녀석과 하루 함께 하고 싶지만 그도 맘뿐인 것을……. 마음속에서 서서히 손주 사랑이 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일정이 있어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겨울비가 내리더니 점점 빗방울이 굵어졌다. 날씨가 푹해서 눈이 아니라서 그나마 천만다행 이였다. 혹시라도 기온이 내려가 눈으로 변할까 은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빗소리를 들으니 제법 많이 오려나보다.

겨울밤은 깊어가고 한낮의 피곤함을 덜어내듯 모두들 세상모르게 곤히 잠들어야 할 시각이다. 선잠을 자다 빗소리일어나 가만히 음악소리 인양 듣다가 이내 자리에 들어보지만 간간히 창밖에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또 선잠에서 깨어났다. 이 순간 참으로 소중한 생각이 든다. 숨 쉬고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다는 것. 모두가 잠든 시간 자연과 벗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산다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고 살맛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을 그저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일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법정 스님의 글이 생각난다. 바쁘다는 핑계를 버리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법도 내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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