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을 보내며

강준희 | 기사입력 2017/12/27 [09:19]

2017년을 보내며

강준희 | 입력 : 2017/12/27 [09:19]
▲ 강준희 중산고 교사     ©

또 한해가 간다. 일년 전, 한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시작하며 마음먹었던 수많은 다짐들, 계획들은 다 어디 갔는가? 똑같은 후회와 아쉬움을 반복하면서 사는게 누구나의 삶이라 변명하면서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그 많은 송년회는 물론 크리스마스 연휴마저 쉬지 못했다. 기말시험을 보고, 신입생을 모집하고, 한 해의 프로젝트를 정산하고 새해의 계획을 제출하는 학교일에 매달려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나 자신은 돌이켜볼 시간도 없이 일에 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후딱 연말이 되고 말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앞둔 지난 연휴, 집에 늦게 들어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자책감에 휩싸여 있을 때, TV에서 만난 다큐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를 보고, 내 지친 영혼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청량감에 휩싸였다.

소록도에서 사십년을 봉사하고, 늙고 병든 육신으로 홀연히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떠난 두 수녀님. 이 분들의 맑고 건조한 삶을 엿보며 일상에 찌든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연말에 이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난 아무 생각 없이 또 한 살 늙고, 그저 흘러가듯 살았을 것이다. 두 분 수녀님은 이십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소록도를 찾았고, 소록도에서 그 무섭다는 전염병이라는 나병 환자들과 사십년을 살고, 아무 말 없이 고향으로 떠나갔다. 평생을 산 그곳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병이 들어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능력이 안되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것 같아, 떠난 것이다. 두 분의 삶을 보면서, 평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줄곧 했다. 도움보다는 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며칠 전부터 얼마 되지 않는 자신들의 살림을 나눠주고, 약을 챙겨주고, 너무도 이별을 아쉬워할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남기고 홀연히 떠난 그분들이 떠난 날은 매년 갱신해야 하는 비자 만기 하루 전날이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봉사하고, 최대한 함께 할 수 있는 날까지 있다가 미련 없이 떠난 그분들처럼 살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가난했고, 나병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시절, 전염이 두려워 격리시켰던 환자들 곁에서, 사람 취급 못받던 그들 곁에서 맨손으로 환부를 치료하고, 매일 아침 따뜻한 우유 한잔을 나누어주던 사랑으로, 주변의 의사나 간호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었던 그분들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전한다. ‘그 어떤 치료약보다도 따뜻한 말 한마디, 환자들을 자신의 숙소로 초대하여 생일상을 차려주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고, 절망을 견디며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했다

두 수녀님의 삶은 이십 오년 전 내가 처음 교사로서 살고자 마음 먹었던 젊은 날의 초심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누구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보다도 나는 헛되이 살고 있지는 않는가? 밤새 뒤척이며 TV 속에 그분들의 소리를 떠올렸다. ‘자기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으로 여기며 살자. 간호는 환자 앞에 있어야 간호다. 책상에서 머리로 공부하기보다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한다. 늘 환자 옆에 있어야 한다’. 이같은 생각으로 평생을 봉사했던 그분들은, ‘희망을 줄 수 있었던 것이 더없는 행복이었다.’ 라고 말했다. 난치의 병에 걸려,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섬에서 격리된 채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준 그분들을 보며 이태석 신부님이 떠올랐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계시다면 바로 이분들이 아닐까? 그분들보다 더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나는 아무런 의미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내며, 죽비와도 같은, 마음을 적시는 소나기와도 같은 만남.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수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잘살자라고 다짐해본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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