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전하는 편지

남상희 | 기사입력 2019/04/08 [10:00]

봄날에 전하는 편지

남상희 | 입력 : 2019/04/08 [10:00]

▲ 남상희 시인     ©

봄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눈 녹으면 금방 달려가겠다고 들창문틈새로 소식을 전해주던 바람 이야기가 맞기는 한가 보다. 앙상한 가지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들이 봄날에 전하는 편지 이었나 보다. 그 속에는 봄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봄 손님맞이하려고 온 동네가 아니 온 천지가 소곤대고 있다. 산등성이엔 울긋불긋 진달래가 곱게 단장을 마쳤다. 노란 개나리꽃도 흐드러지게 눈이 부시다.

 

거리를 나가 보면 오고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상큼한 봄 냄새가 난다. 쇼윈도에 마네킹들도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었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 봄이 내게도 오고 있나 보다. 두터운 옷들은 이제 장롱 속 깊이 넣어 두고 깊이 넣어 두었던 봄옷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본다. 유행이 훨씬 지난 옷들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한 옷들이 참 많다. 언젠가는 한번쯤 입을 수 있겠지 하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장롱 속에 재어 놓는 버릇을 고치기가 참 어렵다. 올 봄에 입어도 될 만한 옷가지들을 정리 하다 보니 그 속에 묻어둔 추억들이 갖가지 많기도 하다.

 

큰애가 생일에 사준 옷. 저건 할인 판매 한다고 해서 입어보지도 않고 상표 그대로 내년 봄에 입겠다고 사놓고 고이 모셔둔 옷, 화사한 옷은 결혼식 갈 때 입어야지 하면서 사 두었던 옷. 저 옷은 상갓집 갈 때 입어야지 고이 접어 모셔두었던 봄날의 옷들을 펼쳐놓고 고민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한 번도 못 입어보고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 갈 옷들이 꽤 많은 것을 알면서도 정리를 못하고 살아 온 세월이 참 많다. 내년에 해야지 하면서 한해 두해 그렇게 옷들도 나이를 먹는다. 계절마다 그런 옷들을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꺼내놓고는 유행하는 옷들을 보면서 행여나 올해는 그 유행이 오려나 은근 기대도 해본다. 그런 희망들은 내게 은근 비타민처럼 생동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옷 저 옷을 입어 보면서 작아서 영 몸에 맞지가 않는 옷은 내년을 기약한다. 이루어 질 수 없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는 꼭 다시 살을 빼서 입어보리라 다짐을 하면서 장롱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옷들이 한두 벌이 아니다. 때로는 유행을 기대하던 마음은 오간데 없고 작아진 옷에 마음이 괜스레 섭섭할 때도 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계절에 맞는 옷들이 내 몸에 언제나 처음처럼 맞았으면 좋겠다. 희망하지만 예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나를 실망하게 한다. 하지만 새해의 봄날은 새롭게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유행은 나중이고, 지난봄에 입었던 옷들을 올봄에도 변함없이 입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또 다른 희망으로 나를 은근 시험에 들게 한다. 건강한 몸매를 위해 그동안 마음만 먹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운동을 요즘은 간간히 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은 희망이다. 언젠가 정리의 달인이 계절에 맞는 옷 정리를 잘하려면 구입하기 전에 먼저 입어보고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정리해서 재활용함에 넣고, 그 다음 구입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는데도 막상 정리하다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입을 것은 더 없다. 삶도 이와 같아서 언제나 복잡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봄날에 전하는 편지 속에 올해는 마음도 비우고 내려놓을 것이 있으면 그 또한 다 내려놓으라 한다. 힘 있는 자는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기는 자라했다. 그 힘을 키우기 위해 봄날 아침에 이 편지를 전해본다.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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