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치는 그림자
김미옥(1964~)
그날 나는 화려한 조명아래 낯선 말들이 오고 가는 한 귀퉁이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네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쳐 입고 끝내 불쑥 올라오는 말들을 달래며 고요하게 서 있었네
이곳은 화려한 말과 글들이 즐비한 파티장 카메라 셔터가 찰칵찰칵 눌러질 때마다 내 안의 낡은 풍경을 환하게 비추네
마술처럼 어디론가 숨고 싶은데 발목이 대리석바닥에 붙들렸음일까 어떤 열망이 이 화려한 파티장에서 머물게 했을까
쓴웃음을 뒤집어쓰고 겨울의 표정과 어둠을 생각 하네 거룩한 말과 더 거룩한 말들은 끝이 안 보이고 사람들은 말을 먹고 있네.
얼어붙은 마음에 금이 생기고 금간 틈새로 찬바람이 부네 그날의 그림자는 소용돌이치네.
그날 나는 낯선 말들이 오고 가는 한 귀퉁이에서 그림자였네.
길이든 사람이든 처음만남이 낯설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김미옥 시인은 등단이란 절차로 문단에 첫발을 내딛던 날, 그러니까 신인상을 수상하던 그 날을 호명하여 당혹스럽던 소회를 담담히 풀어놓습니다.
"그날 나는 화려한 조명아래 낯선 말들이 오고 가는 한 귀퉁이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네"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 날 자신은 소용돌이치는 그림자 였다고 고백합니다.
문단(文壇)이란 문단 밖에서 보면, 거룩한 더 거룩한 말들로 먹고사는 문사들의 협회일 수 있습니다. 이미 등단하여 겪어 온 문인 행사였다면 모처럼 즐기며 소통하고 친교 하는 자리겠지만, 갓 등단한 시인으로선 영광스러운 자리임에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쳐 입은 듯 쑥스럽게 서 있게 만들 수 있었을 테지요. 아는 사람도 없는데 친절히 말을 걸어주는 이조차 없었다면, 그 낯설고 당혹스러워 얼어붙은 마음에 금이 생기고 찬바람이 부는 것이야 당연하였겠지요.
하지만, 얼음은 금이 가면서부터 깨지고 녹고 소용돌이치며 봄바람 꽃샘추위를 불러오니까.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는 더불어 함께하고픈 열망의 그림자로 보입니다.
김미옥 시인은 이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로 지난해 계간 「문학청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으로 그물망처럼 연결된 문단 내 인연을 촘촘하게 엮어갈 것입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문학인의 길은 자신과의 싸움이 숙제인데, 새한마트 사장님으로 시인으로 빈틈없이 부지런한 성품이니, 소용돌이치는 그림자를 데리고 두려움 없이 나아갈 앞날이 기대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한 눈에 보이는 무수한 길은 사람이 사람에게로 달리는 삶의 형상입니다. 어차피 삶의 인과관계는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낯선 얼굴들에서 소용돌이치는 그림자가 보이는 날입니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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