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무늬

박상옥 | 기사입력 2020/02/12 [12:36]

허공의 무늬

박상옥 | 입력 : 2020/02/12 [12:36]

 

허공의 무늬

 

                            / 김생수(1955~)

 

새들은 발이 날개이다. 허공을 딛고 산다

허공은 자취가 없다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어 기록이 없다

저장된 것이 없으니 시간도 세월도 없다

새털 같은 날도 한 순간이다

순간 순간이 한 생이다

 

새들의 생은 나타났다 이내 지워진다

독립된 날개로 찰나의 생을 산다

새들의 발은 태초와 종말을 반복하여 산다

새들의 자리는 허공이다

바람도 계절도 그 자리가 그 자리다

본래의 자리가 없다

 

*김생수(1955~)

 강원춘천 출생 1995 「문예한국」, 2010 「미네르바」 등단.

 충주문협부지부장 역임. 행우문학,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고요한 것이 아름답다」 「지나가다」 「아버지가 그립다」

 

 

▲ 박상옥 시인     ©

2019년 「충주문학」 37집을 뒤적이다보니, 김생수 시인의 〈허공의 무늬〉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주 만나진 않아도 어느새 근 10여년을 한 도시에서 지켜보게 되었으니, 어딘가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김생수 시인입니다. 자유 영혼을 타고난 시인이며, 머물기보단 길 위에서 사는 시인이며, 나름대로 삶의 정수를 깨달은 시인이라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내는 사람의 풍경을 시업(詩業)으로 사는 기타 치는 가수요 유명시인입니다.

 

출간된 시집 「고요한 것이 아름답다」 「지나가다」 「아버지가 그립다」를 순서대로 읽으면 김생수 시인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고요한 것이 아름답게 지나가도록 살다보니 문득, 그 옛날 내 나이 아버지가 그립다”라고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아버지를 그리던 시인의 눈에 날개로 허공을 딛는 새들이 들어옵니다. “새들은 발이 날개이다. 허공을 딛고 산다 / 허공은 자취가 없다 기억이 없다 / 기억이 없어 기록이 없다 / 저장된 것이 없으니 시간도 세월도 없다.”

 

시인의 눈에 세월도 돌아보니 한 순간이라 자취 없이 빠르게 사라진 허공이 들어오고. 그리하여 ‘바람도 계절도 그 자리가 그 자리다’라는 체념과 순명으로 읽어냅니다. 시를 따라 읽으면서 저 역시도, 이승이란 악착같이 살아도 뼛속까지 사무칠 그리움조차 흔적 없는 허공이라 읽히는데.

 

새들이 딛고 날아오르는 허공에다 시인이 자신의 자유를 은근이 빗대어 들이밀다가 바람도 계절도 본래의 자리가 없다며, 능청스레 입을 다물어버리는 시인입니다.

 

입춘이 지났으니, 곧 봄바람에 온 천지가 몸살을 앓을 것입니다. 수많은 새들은 허공을 딛고 날아가고 날아 올 것입니다. 허공 한 귀퉁이마다 꽃이 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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