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도병의 편지

이대훈 | 기사입력 2021/02/23 [09:38]

어느 학도병의 편지

이대훈 | 입력 : 2021/02/23 [09:38]

▲ 이대훈 전 한국교통대학교수     ©

비가 오는 무료한 오후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학도병의 편지라는 글을 읽었다. 학도의용군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 괴뢰군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학생 신분으로 자진 참전하거나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징집된 대한민국의 학생들로, 계급장이나 군번도 없이, 수류탄 몇 개에다 총 한 자루 들고 전장에서 몸부림치면서 싸우다 죽거나 다치는 것은 둘째치고 포로로 붙잡혀 간 학생의 수도 적지 않았다. 주요 전투로는 화개 전투, 장사 상륙 작전 및 포항 전투가 있다.

 

학생들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인민군의 10개 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 1개 기계화부대 등 198,380명의 병력과 150여 대의 탱크, 200여 대의 항공기를 가지고 오는 상황에서 '책 대신 수류탄하고 총을 달라'면서 자원입대하였다. 학도의용군이 처음으로 조직화된 것은 전쟁 발발 직후였는데, 당시 서울 시내 각급 학교의 학도호국단 간부 학생 200여 명이 '비상학도대'를 결성한 것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

 

실전보다는 후방에서의 피난민 구호와 전황 보도 및 가두 선전 등과 같은 선무공작을 담당하도록 했지만 전황이 불리해 계속 남쪽으로 피난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1950년 7월 1일 학생들은 대전에서 대한학도의용대를 새로 조직하고, 실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실전에 참여한 학도병이 모두 2만 7,700여 명이고, 후방지역 또는 수복지역에서의 선무활동에 종사한 학도병은 무려 20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이들이 국가에 공헌한 바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 실린 학도병의 편지를 여기 전재한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도병의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가 죽인 사람이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한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이 폭발하는 소리는 저의 고막을 찢어놓고 말았습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말과 같은 피를 나눈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 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살아서 돌아갈테니까요. 그럼...

 

-1950년 8월 10일 아들 이우근-

 

결국 그는 8월 11일 전투를 벌이다 숨을 거두었고 그의 주머니에서는 어머니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날 학도병 48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어머니 품에서 시원한 냉수와 상추쌈이 먹고 싶었던 학생,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꿈꿨을 소박한 일상들, 그리고 전투를 벌이던 어린 학도병을 본 북한군은 항복을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 어린 영웅들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한 17세 의수 학생의 편지>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께!

 

다행히 이 편지가 부모님께 전해져 부디 두 분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 편지를 받아보시길 기대하며 연필을 듭니다. 할머님은 건강하시죠? 동생들에게도 제가 많이 보고싶어한다고 전해주십시오. 저는 지금 부산의 낙동강 근처입니다. 이곳은 생각보다 정말 비참하고 참담하고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폭음 속에서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매일 같이 붉은 피에 물들어 죽어가는 전우들을 보면 몸서리치게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집에 돌아가고도 싶지만 나라를 잃으면 가족들도 잃는 것이라는 대대장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용기를 내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새로이 하나 된 나라 아래서 행복하게 동생들이 뛰어놀고 커갈 것을 생각하니 하루하루 힘든 전투들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과 가족들이 못내 그리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어머님께서 해주셨던 참기름을 듬뿍 바른 갓 쪄낸 쑥개떡이 가장 그립습니다. 꼭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리운 어머님의 쑥개떡을 먹어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어머님 아버님! 한 번도 말씀드린 적 없지만 마음 속 깊이 두 분을 사랑하고 있음을 전합니다. 부디 다시 뵐 날까지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큰 아들 의수 올림 -

 

문득 창밖에 내리는 비가 학도병들이 흘리는 피같이 느껴졌다. 유리창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적들에게 돌격하며 내지르는 저들의 고함소리와 적들의 총탄에 맞아 죽어가며 내쏟는 비명소리 같이 느껴졌다. 겨우 16-17세의 어린 학생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총을 들고 나섰다. 이런 학도병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요 영웅이 아니던가! 미국은 영웅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학도병들에게 그 유족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주고 있는지!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자의 것이다.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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