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김영희 | 기사입력 2019/11/05 [09:29]

선생님

김영희 | 입력 : 2019/11/05 [09:29]

▲ 김영희 시인     ©

나는 주덕읍 화곡리 여우내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마을 동쪽 끝이라 조용하다. 우리집 들어오는 길은 아담한 산 밑, 도랑물 따라 따로 나 있다. 길 가에는 철철이 피어나는 풀꽃 향기가 그윽하다. 이웃과는 개나리 울타리 너머 밭 하나 사이를 두고 있다. 앞마당 가에는 우리만 쓰는 냇물이 있어서 빨래를 하기도 했다. 맑은 물에는 하늘소 방개 미꾸라지 버들치 등이 어울려 살았다. 집 입구에는 펌프샘이 있어서 식수로 쓰기에 충분했다. 가끔씩 샘에다 한얀 소독제인 알약을 넣기도 했다. 펌프샘 앞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가에는 토란이나 머위가 빼곡했다.

 

집 사방은 밭이다. 밭가에는 야트막한 산이 아늑하게 감싸준다. 밭은 집하고 붙어 있고 논은 지겁질 검박골 두 곳에 있다. 그런 자연 속에서 자라다보니 자연 생태에 대해서, 보고 느끼는 게 많았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렸다.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른 후 기도를 했다. 그리고 돌아가며 성경 한 구절씩 읽도록 했다. 아기 때부터 책을 가까이 하다 보니, 학교 들어가기도 전에 성경을 줄줄 읽게 되었다. 나는 성경 구절 찾는 게 재미있어서 점점 읽는 게 빨라졌다. 자꾸 읽다보니 내용을 알게 되고 내용을 이해하게 되니 궁금해져서 읽는 것이다. 특히 구약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웅장한 내용이 많아 재미있었다. 읽다보면 마치 영화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책 읽는 나를 늘 칭찬하셨다.

 

여덟 살 나는 주덕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십리 가까이 되었다. 한동안은 가슴에다 손수건을 달고 걸어 다녔다. 학교에 들어가니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나는 첫날부터 국어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러나 국어책을 읽어도 내용이 단순해서 심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공부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안고 수업하는 일이 생겼다. 노순옥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가끔씩 나를 오른손으로 안고, 왼손에는 회초리를 들고 다니시며 수업을 했다. 그런 선생님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늘 엄마 같은 따스한 표정이었다. 1학년이면 꽤 무거울 텐데 왜 그러셨을까. 그 일은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한 아이가 잘 못하면 반 전체 아이들이 손을 들고 벌을 받았다. 무엇을 잘못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어떤 날은 반 전체 아이들과 운동장 한 바퀴 토끼뜀을 뛴 적도 있다. 그런 날이었을까.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학교에서 받은 빵을 들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지키고 있다가 1학년 아이들 빵을 빼앗아 달아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꿈에도 잊혀 지지 않는 노순옥 선생님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충주예성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걸 알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학교로 찾아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 학교는 조용했다. 선생님이 근무하는 교실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 계시는 노순옥 선생님이 보였다. 내가 1학년 때 뵈었던 선생님 모습 그대로 느껴졌다. 차분하고 인자한 따듯함이 전해졌다. 나는 당장 교실에 들어가 큰 절을 올리고 싶었다. 나는 콩닥콩닥 가슴을 누르며, 선생님! 노순옥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저 영희에요 영희가 왔어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선생님을 소리 없이 불렀다. 반가운 눈물이 자꾸만 흘러 내렸다. 눈물이 멈춰야 들어가겠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런 모습을 들키면 어쩌나 숨죽여가며 교실을 들여다보고 또 눈물 훔치고를 몇 번을 했던가. 긴장된 시간이 이어지는데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복도에서 유리창 너머 보이는 선생님 모습만 몰래 훔쳐보다가 되돌아섰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뼈 마디마디가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뵙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돌아오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세상에 태어나 유일하게 기억되는 선생님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하늘아래 선생님을 잃고 평생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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