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김영희 | 기사입력 2020/10/13 [10:25]

발자국

김영희 | 입력 : 2020/10/13 [10:25]

▲ 김영희 시인     ©

발소리 나지 않는 신을 신고 발자국 나지 않는 길을 걷는다. 소리 없는 언어와 온갖 소음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소리 없이 나는 나비와 소리 없이 기는 개미를 만난다. 푸르딩딩한 나뭇잎이 바람을 신는다.

 

버스에 몸을 싣고 목계강가로 나가본다. 강가에는 여름 장마가 지나간 흔적이 펼쳐진다. 버드나무 가지마다 장마 쓰레기가 빨래를 넌듯 너저분하게 걸려있다. 우듬지 가까이 결려있는 걸 보면 물이 그만큼 차 오른 것으로 보인다. 산사태가 나서 깊이 파인 곳에는 바위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버드나무 사이로 걸어본다. 주먹만한 돌들이 길을 내던 곳에는 모래로 덮여있다. 어릴 때 보았던 금빛모래다. 그 많은 모래가 어디서 쓸려왔을까. 모래는 갈대 사이사이 뽀얀 살결처럼 보인다. 햇볕에 데워진 모래에 앉아 모래를 손에 쥐어본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돌을 덮어버리고 모래가 사는 강변이 되었다. 충주강에서 머무는 금모래는, 가을을 만나고 겨울을 만나고 봄을 만나 쉴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 장마를 만나면서 그들은 다시 지구의 여행을 떠나리라. 모래에 앉아서 모래알 같은 인연과 별들과 꽃들을 생각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천억개의 은하수와 은하수 각각마다 지니는 천억개의 별을 생각해본다. 바윗덩어리가 부서지고 부서져 모래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해본다. 우주안에서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방윗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지구를 생각해본다. 모래위를 걸어간 새발자국이 보인다. 고라니 발자국도 보인다. 말조개 껍질들이 여기저기 알맹이 없이 입을 벌리고 있다. 큰 장마가 핥고 간 강의 지형마저 물길이 바뀌고 있다.

 

강가에서 손을 씻다보면 모래와 잔돌 사이에서 물을 뿜는 손바닥만한 말조개를 본다. 장맛비에 흘러 넘치던 붉은 강을 잊게 할 만큼 새들이 앉은 강은 아름다워 보인다.

 

강너머 황금빛으로 물드는 벼 중에는 허리를 못펴고 반쯤 누워서 영근다. 오래전에 있던 작은 언덕도 떠내려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기후에 의해 이렇게 조금씩 움직이고 변하는가. 산도 변하고 길도 변하고 강흐름도 변한다. 세찬 물살에 날개를 다 뜯긴 갈대가 앙상하게 허무를 찌르고 있다. 노을이 붉게 물드는 강가에서 새들이 입을 씻는다. 흐르는 물소리 들리지 않고 바람도 없는 강가에서, 새처럼 금모래 위에 홀로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새발자국은 작아도 선명한데 내발자국은 선명하지가 않다.

 

조개 껍질이 갈대 사이로 꽤 많이 보인다. 처음 가본 솔밭 야영장엔 텐트가 몇 보인다. 목계나루 행사장도 모래와 갈대로 뒤덮여있다. 고운 모래밭을 걷다보니 모래처럼 흘려버린 시간이 보인다. 올 겨울은 충주강돌이 모래로 덮여 춥지는 않을 것 같다. 작은 물고기들이 널뛰듯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그 때를 노리고 있던 백로가 고개를 길게 빼며 물고기를 낚아챈다. 그리고는 우아한 자태로 또 기다린다. 노을이 점점 붉게 내려앉을 즈음, 카톡전화벨이 울린다. 89세 어머니의 전화다. 요즘 들어 일주일이 멀다하고 카톡으로 전화를 하신다.

 

“요즘은 코로나가 좀 수구러 들었나”

 

“예 다들 조심하니까 좋아지고 있어요. 엄마 여기 강가에 왔어요. 엄마도 단월강 생각나지요”

 

“우째 강가엘 다 갔어. 거기 단월강에 조개가 많았지”

 

“여기 강가에도 손바닥만한 말조개가 있네요”

 

"말조개가 있어?"

 

어릴때 단월강 생각이 나는구나 하신다. 한참을 단월강 추억을 들려주시던 어머니는 시월 십구일이 거기서는 아주 중요한 날이라며 자꾸만 강조하신다.

 

충주강은 친가, 외가 대대로 추억의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간다. 내가 태어난 충주강변을 걷다보니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국민 모두 청결운동의 해가 되는 것 같다.

 

국민들의 모든 노력이 건강한 앞날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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