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희망

남상희 | 기사입력 2021/05/18 [15:15]

오월의 희망

남상희 | 입력 : 2021/05/18 [15:15]

▲ 남상희 시인     ©

내 눈이 흐린 탓인지 온 천지가 흐릿하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오락가락 빗줄기도 한차례 퍼붓고 지나갔는데도 점점 시야가 흐리다. 눈도 따갑고 목도 매캐하다. 하늘엔 잿빛 커튼으로 둘이 우고 맑고 명료하게 보이던 산봉우리는 숨바꼭질 중이다. 술래는 당연히 내가 된듯하다. 찾으려고 바쁘게 눈알을 굴려보지만 점점 더 베일에 싸여만 간다. 저 멀리 잘 보였던 아파트도 사라졌다. 아마도 같이 숨은 게 분명하다. 온종일 술래잡기를 해 봤지만, 허탕만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스크가 노랗게 물이 들었다. 전에 같으면 고리에 하루쯤은 아니 이틀 정도는 매달려 있어도 괜찮았다 싶었는데 영 아닌 것을……. 얼굴은 땀도 흘리지도 않았는데, 마스크 사용 부분을 제외하곤 버석거리고 먼지투성이다. 바람이 온몸에 미세먼지로 칠을 해줬나 보다. 요즘 들어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틈만 나면 밭에 가서 산다. 심어 놓은 각종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자식처럼 사랑하기 딱 좋다. 다 자란 채소는 밥상의 보약으로 올라오고 덜 자란 것에 대한 열정은 지루함도 잊게 하는 처방 약이다. 빠르게 흐르고 있는 시간도 감지하는 능력도 생기게 하는 마법도 있다. 그동안에 수십 년을 직장생활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에 자주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더디게 가는 세월도 탓하면서 빨리 탈피하고 싶었던 그 시절 그때가 요즘 들어 자주 생각이 난다. 지금처럼 열정이 많았었더라면 아마도 또 다른 세상을 꿈꿨을지도 모를 궁금증도 밭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 사라진다. 노년에 왜 힘들게 농사를 짓느라 애쓰냐고 주변 사람들이 만류한다. 몸 상한다고 아이들 잔소리도 만만찮다. 하지만 지금이 좋다. 더러는 육체가 고달프긴 하지만 나름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얼마 전 딸애 친구 아버님이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정년하고 얼마 안 되었다면 아직 인생 제2막에 초년생인데 삶에 대한 애착이 덜해서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날 때마다 혼돈이 시간이 날 엄습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찾아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고 마음으로 커가는 농작물과 무언의 대화를 하다 보면 만사 시름 다 잊어버리게 한다. 머리도 맑아지게 하고 쓸데없는 망상도 사라지게 하는 참으로 묘약이 아닐 수 없다. 삶에 대해 여유로움도 준다. 산책 삼아 걸어서 이삼십 분 거리에 소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로길 양옆으로 보릿대가 노랗게 물들어 가는 풍경은 말 그대로 풍경화가 따로 없다. 겨우내 새싹으로 버티다 봄날 조금씩 조금씩 자라더니 오월을 더없이 아름답게 한다. 사과나무 잎새 뒤에 콩알만 하게 자라고 있는 사과도 풍요로운 가을을 꿈꾸게 한다. 오고 가는 길가에 가로수로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잎은 풍성하니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더운 여름날에 적당히 그늘로 품 안에 들게 하는 배려심을 배우게 한다. 자연은 내게 있어 스승이고 친구일 때가 참 많다. 푸르름으로 가득한 오월의 창공을 꿈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오월 속에 가득 숨어 있는 희망을 유월에도 칠월에도 일 년 내내 심어서 열매로 맺어지기를. 어린이날도 가고 어버이날도 가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의 날 부부의 날 그런 날들을 기념할 수 있는 오월은 참으로 대단하다. 대단한 오월을 닮아 가려고 애쓰는 오늘이 있어 좋고 내일이 있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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