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김영희 | 기사입력 2021/06/01 [08:57]

보리밭

김영희 | 입력 : 2021/06/01 [08:57]

▲ 김영희 시인     ©

보리는 익어가는데 하늘이 새는 것처럼 비가 자주 내린다. 비에 젖은 싱그러움을 새들이 물어 나른다. 새벽 동트는 시간 집 앞 만리산에서 마즈막재를 바라본다. 날개를 펼친 듯 계명산과 남산 사이로 해가 떠 오른다. 딱따구리와 뻐꾸기 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꾀꼬리 소리도 들리고 까치 소리도 들린다. 또 어떤 새는 나만 보면 지지배 지지배 하면서 수다를 떤다. 점점 밝아지는 아침, 온갖 새들의 소리가 숲을 연다. 만리산 산책길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멍석을 펼쳐놓은 듯한 만리산 꼭대기를 열댓 번 걷는다. 아침의 푸른 공기를 마시며 계절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익어가는 봄을 그려놓은 듯 저만치 황금 보리밭이 보인다. 만리산을 내려와 안림동 보리 밭을 향하여 걷는다. 과수원 길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길가에 앵두는 빨갛게 익어 터질 것 같다. 밤나무도 꽃피울 준비를 한다. 복숭아와 사과는 어느새 밤톨만하다. 농부의 손은 쉴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꽃을 솎아내고 다붓다붓한 열매를 솎아낸 가지가 여유롭다.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서는, 버려지는 열매가 절반이 넘는다.

 

중간쯤 걷다 보니 밭에서 풀 뽑던 지인이 미나리를 한 다발 준다. 그리고는 밭 한 고랑에 야채를 심어 먹으라 한다. 고마운 마음에 가지와 케일 그리고 상추를 심어보고 싶다. 보리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보리밭 보니 보리밥이 먹고 싶다. 강낭콩 섞은 보리밥에 겉절이 넣어 비비면 참 맛날 것 같다. 밥알이 미끄덩거려 입안에서 겉돌던 보리밥 먹어 본지도 오래되었다.

 

보리밭은 꺼끄러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어렵다. 그러나 거리 두기 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멋진 풍경화다. 길가 호젓한 집 마당에는 까투리 없는 장끼가 닭처럼 먹이를 유유히 쪼고 있다. 사진을 찍어도 멋스럽게 걷는다. 꿩을 잡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는 것 같다.

 

보리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간다.보리농사 짓는 집 앞을 지난다. 보리 농사짓는 집에는 농기계를 갖추어 놓고 직접 농사 지은 보리를 집 마당에서 도정한다. 지난해 그 보리를 한 말 사려고 했으나 주문이 많아 맛볼 수는 없었다. 올해는 보리주문 예약을 해서라도 이웃마을 보리쌀을 꼭 먹어보고 싶다. 산책을 하다가 보리밭에서는 사진을 찍는다. 보리밭을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를 바라보는 보리는 익을수록 수염이 도도하다. 보리를 혼자 보기 아까워 가끔은 친구와 함께 걷는다. 걷다 보면 보리밭 노래가 흥얼흥얼 저절로 나온다. 아침 저녁 과수원길 걷다가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래도 보리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마을사람들은 친절하게 대해준다.

 

이토록 아름다운 보리밭 풍경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이 곳에 주택이 들어서려면 10년 안 걸릴 수도 있겠지만 보리밭은 추억이 될 것이다.

 

가을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이듬해 첫여름에 수확을 한다. 봄보리는 이른 봄에 씨를 뿌려 첫여름에 거둔다. 가을보리나 봄보리나 수확은 첫여름인데 맛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른 봄부터 보리밭을 수 없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보리꽃을 자세히 보거나 향기를 맡아본 적은 없다. 벼꽃은 자잘하게 쌀알맹이처럼 핀다. 보리꽃은 보리알맹이 같은 꽃술을 내밀면서 핀다. 보릿대로 보리피리 한 번 불고 싶지만 마음으로 불어본다. 보리 익는 유월이 되자 오디도 익어 뚝뚝 떨어진다. 새들은 신이 나는지 더 고운 소리를 낸다.

 

보리는 세계 4대 작물 중 하나로,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작물의 하나이다. 보리는 우리나라 60년대 초까지 봄철 춘궁기를 달래던 자연 강장제다. 보리가 들어간 음식은 건강에 도움을 주고 더 깊은 맛이 난다. 초록빛 속에서 연실 꽃피고 열매가 커가는 가운데, 통통하게 여무는 황금보리는 유월의 어른 같다. 올 여름은 보리밥을 먹으며 내 영혼의 보릿고개를 넘고 싶다..

 

보리 익는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리며 숭고한 애국정신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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