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새재를 넘으며 - 3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8/30 [10:27]

문경 새재를 넘으며 - 3

김희찬 | 입력 : 2023/08/30 [10:27]

 

1관문의 왼쪽은 조령산이고 오른쪽은 주흘산이다. 두 산 사이로 난 긴 골짜기를 따라 문경 새재길이 나있다.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도 있고, 새로 생긴 전동차를 타고 편안한 유람을 하는 이들도 있다. 곧바로 왼쪽에 드라마 촬영장이 있고, 오른쪽에 수십 기의 비석이 줄지어 서서 문경 새재를 걷는 이들을 마중하는 듯하다.

 

거기에는 1700~1800년대에 세운 관찰사(觀察使) 및 순찰사(巡察使) 비석 11기와 군수(郡守) 및 현감(縣監) 비석 7기, 기타 2기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본래 문경읍 관내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한 곳으로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잘 살펴보면 쇠로 만든 철비(鐵碑)도 하나 있다. 이외에 2관문과의 사이에 절벽에 새긴 8기의 마애비(磨崖碑)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선정비(善政碑)’라고 한 그것에 약간의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목숨 걸고 줄에 매달려 새겼어야 할 마애비의 경우 작업 자체가 민폐가 아니었을까? 심지어 한 사람에 대해 3개의 마애비가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충주에도 수십 기의 선정비가 있지만 대규모로 모아 놓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이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잘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전체 현황 파악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새재길은 숲길이고 흙길이고 어쩌면 사람 전용 도로여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곧바로 천년고찰 혜국사(惠國寺)와 이별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거기에서 혜국사까지 2㎞ 거리라고 하는데 걷기에 빠듯한 일정이어서 매번 지나치며 이별만 했다. 겨울에 충주의 옛절터에 대한 전체 답사를 하려고 준비 중인데, 그때 범위를 넓혀 꼭 들러보리라.

 

1관문과 2관문의 중간쯤에 ‘조령원터’라고 하여 거대한 규모의 돌담으로 두른 곳이 나온다.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라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거기가 과연 조령원(鳥嶺院)이 있던 자리인가 의심하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지지류에는 ‘조령원(鳥嶺院), 새재의 고개 동쪽에 있다.(在鳥嶺脊東)’고 기록하여 왔다. 꼭대기의 3관문이 있는 새재의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2관문에도 못미처에 있는 그것이 조령원이다? 신혜원(新惠院), 동화원(東華院), 조령원 등 기록에 보이는 새재 인근의 세 개의 원 중에 조령원이 돌담을 두른 그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혜원은 연풍면 고사리에 있었고, 동화원은 2관문과 3관문 사이에 있었던 것이 명확하니 남은 것 하나가 여기라고 해놓은 것은 편의에 의한 판단이 아닐까 싶다. 물론 돌담을 두른 시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조령원이었을까?는 의문된다.

 

다만, 돌담을 두른 시설인 점은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대원(大院)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요긴하다. 미륵리 대원의 경우 하늘재를 넘어서 시설한 큰 원이었다. 경상도 쪽에는 관음리에 관음원(觀音院)이 있어서 서로 짝을 이룬다. 대원 터를 발굴조사한 결과 回자 모양의 주초석이 확인되었고, 그것을 정비해 놓은 유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닥에 깔린 주초석 만을 보고 전체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조령원터라고 하는 곳의 돌담을 통해 그것의 몇 배 규모였던 대원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조령원터를 지나 숲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멋진 정자 하나가 섰다. 교귀정(交龜亭)이란 이름을 가진 곳으로 조선시대에 경상도 관찰사가 임무교대를 하면서 인수(印綬)를 교환하던 곳이다. 성종 대(1470년대)에 문경현감 신승명(愼承命, 미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김종직(金宗直, 1431 ~ 1492)이 정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사라진 것을 1999년 가을에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 ~ 1759)이 그린 <조령용추도(鳥嶺龍湫圖)>를 보고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정자에 올라갈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리고 교귀정 앞에 흐르는 계곡을 용추(龍湫)라고 부른다. 수십 미터 높이의 폭포는 아니지만 새재를 넘나들던 옛 사람들이 지은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문경 새재길에는 옛 사람들이 지은 한시를 추리고 번역하여 새겨놓은 시비(詩碑)가 여럿 있다. 새재 주막에서 시작되는데 교귀정 앞의 용추를 두고 세 개의 시비를 세웠다. 어변갑(魚變甲, 1381~1435), 이황(李滉, 1501 ~ 1570), 이정귀(李廷龜, 1564 ~ 1635)가 지은 용추와 관련된 시비가 있다. 그 중에 퇴계 이황의 시를 옮긴다.

 

<용추(龍湫)>

 

巨石贔屓雲溶溶 큰 바위 힘 넘치고 구름은 도도히 흐르네

山中之水走白虹 산 속의 물 내달아 흰 무지개 이루었네

怒從崖口落成湫 성난 듯 낭떠러지 입구 따라 떨어져 웅덩이 되더니

其下萬古藏蛟龍 그 아래엔 먼 옛적부터 이무기 숨어 있네

蒼蒼老木蔽天日 푸르고 푸른 노목들 하늘의 해를 가리었네

行人六月踏氷雪 나그네는 유월에도 얼음이며 눈을 밟는다네

湫邊官道走玉京 깊은 웅덩이 곁에는 관도가 서울로 달리고 있어

日日輪蹄來不絶 날마다 수레며 말발굽이 끊이지 않는다네

幾成歡樂幾悽苦 즐거웠던 일 그 몇 번이며 괴로운 일 또 몇 번이었던가

笑撫乾坤睨今古 하늘 땅 웃고 어루만지며 예와 오늘 겻눈질하네

大字淋漓寫巖石 큰 글자 무르녹은 듯 바위에 쓰여 있으니

後夜應作風和雨 다음날 밤에는 응당 바람 비 내리리라

- 이황, 『퇴계집(退溪集)』 별집 권1

 

걷기에 바쁜 길이지만 새재 주막부터 시작되는 옛 사람들의 시비를 하나씩 읽어 보는 것도 새재를 걷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그 아래로 내려가 보면 2003년 10월에 복원해 놓았다는 <용추약수>가 졸졸졸 흘러나온다. 약수 한 바가지 마시고, 교귀정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들이는 여유도 괜찮다.

 

이황의 시에 용추 웅덩이에 이무기[蛟龍]가 숨어 있다고 하였듯이, 예전에 가뭄이 들면 문경 지역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리던 곳이었음도 기억해 둘 일이다. 그리고 용추 건너편의 바위에 龍湫라고 쓴 글자 두 개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끼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을 참고하여 숨은 글씨 찾기를 해도 괜찮다.

 

여러 가지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교귀정과 용추에서 땀을 들이고 쉬었다면 가벼워진 발길을 2관문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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