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새재를 넘으며 - 5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8/30 [10:33]

문경 새재를 넘으며 - 5

김희찬 | 입력 : 2023/08/30 [10:33]

 

슬쩍 지나가면 될 2관문에서 만난 충주 사람 신충원(辛忠元)을 두고 말이 많았다. 2관문을 지나서 걷다 보면 커다란 비석을 만난다. <문경새재 아리랑> 비석이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라는 한번쯤 들어보았을 그 대목이 있는 문경 새재 아리랑이다. 길을 제외하면 온통 산이고 숲이지만, 가로수로 심어 놓은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면 ‘물박달나무’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이 눈에 띈다. 홍두깨와 다듬이 방망이 뿐만 아니라 다듬잇돌을 만드는 데까지 새재의 물박달나무를 썼다고 하니 그 유명하던 물박달나무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새재 곳곳의 휴게소에서는 음악을 틀어 놓았지만, 정작 소리로 들어야 제멋이 날 듯한 <문경새재 아리랑> 비석 앞은 조용하다.

 

그런 사연이 담긴 <문경새재 아리랑> 비를 지나 귀틀집을 만날 수 있다. 화전을 일구거나 물박달나무를 벌목하던 이들이 머물렀을 법한 귀틀집을 지나서 동화원 못미처 다리깨의 색시폭포 근처에 <이진터(二陣址)>라는 안내문이 있다. 그 설명이 제법 그럴 듯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임진년(壬辰年, 1592년) 왜장(倭將)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18,500명의 왜군을 이끌고 문경새재를 넘고자 진안리에서 진을 치고 정탐할 때 선조대왕의 명을 받은 신립(申砬) 장군이 농민 모병군(募兵軍) 8,000명을 이끌고 대치하고자 제1진을 제1관문 부근에 배치하고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새재에서 왜적을 막자는 김여물 부장 등 부하들의 극간을 무시하고 허수아비를 세워 초병으로 위장 후 충주 달천(탄금대) 강변으로 이동하여 배수진을 쳤으나 왜군 초병(哨兵)이 조선 초병 머리 위에 까마귀가 앉아 울고 가는 것을 보고 왜군이 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문제는 ‘제2진의 본부를 이곳에 설치하였다’ 인데, 과연 그랬을까? 앞서 <일진터>에 대한 안내는 없었고, 불쑥 <이진터>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각종 자료를 종합해 보면 신립이 조령 정찰을 나왔던 정황은 확인된다. 그러나 6월 6일인 음력 4월 27일에 단월역(丹月驛)을 중심으로 진을 쳤었고, 이튿날은 진을 탄금대 앞으로 옮겨 배수진(背水陣)으로써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이진터라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여 생긴 이야기일까?

 

이진터를 지나면 곧바로 동화원 휴게소가 나온다. 옛날 동화원 자리이다. 부봉(釜峰) 등산 안내판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보통은 잘 닦아 정비해 놓은 3관문까지의 길을 걷지만, 동화원 휴게소 뒤에 있는 옛길을 추천하고 싶다.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면 옛길이 만들어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동화원까지 이르는 길은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을 따라 닦여있다. 그러고 보면 산길은 대부분 골짜기 계곡을 따라 길이 흐른다. 동화원 휴게소 뒤쪽의 조붓한 옛길은 3관문 직전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그 구간에 ‘금의환향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많은 사람이 잘 닦인 길을 걷기 때문에 오히려 한갓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미 도시를 떠난 몸이라 한갓진 데도 다시 한갓지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다.

 

골짜기를 따라 조금 오르면 ‘낙동강 발원지’라는 표시와 함께 샘 하나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낙동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황지(黃池)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낙동강 발원지가 있다. 태백의 황지는 길이로 가장 길기 때문에 발원지라고 한 것이다. 길이로 따진 발원지의 변경은 한강도 마찬가지이다. 1980년대 초까지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평창군의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중간에 있는 우통수(于筒水)로 기록되었지만,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길이 측량을 통해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儉龍沼)를 최종적인 한강 발원지로 1987년에 국립지리원에서 고쳤다. 그러나 4대강이니 5대강이니 하는 큰 강은 여러 지류가 모여 흐르는 강의 대표적인 이름이고 여러 지류의 원천은 무수히 많다. 결국 이곳의 낙동강 발원지라는 것도 과거 영남 사람들이 한양을 가는 길에 낙동강을 지나 걸어오면서 그 줄기의 원천인 이곳을 지나며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낙동강 발원지라는 샘을 지나면 커다란 돌탑을 만나게 된다. <문경새재 책바위 이야기>라는 설명이 있어서 돌탑에 얽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소원성취탑’으로 부르기도 한다. 커다란 돌탑 위에는 똘망한 눈에 두 손을 모아 책을 한아름 안고 다소곳이 서있는 조각상이 있다. 책신(冊神)이라고 하며, 신선이라는 설명도 보인다. 신선이 하늘에 함께 기원해 주어 장원급제하여 마패 차고 감투 쓰는 벼슬길로 나아가게 된다는 전설과 함께 특히 입시철이면 소원성취를 비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여 놓았다. 솔깃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구간의 옛길에는 물길을 만나면 나무를 가로 걸어[橫木] 다리를 놓은 곳을 여러 번 만난다. 그야말로 옛길의 온전한 모습을 보며 걷게 된다.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며 숨이 턱에 찰 때쯤이면 다시 닦인 길과 만난다. 거기에 서면 앞에 3관문이 우뚝 서있다. 휴게소에서 틀어놓은 노랫가락이 은근히 울리면서 3관문까지 여정의 끝이 보인다. 다가가면 영남제삼관(嶺南第三關)이라고 쓴 현판이 보이고, 홍예(虹蜺)를 지나 돌아보면 조령관(鳥嶺關)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문경과 연풍의 경계이며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지점이다.

 

홍예를 지나지 않고 왼쪽으로 빙 돌면 거기에도 성황당이 있다. 1관문의 성황당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처럼 겹쳐지는 성문과 성황당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새재 주막에서 시작된 조령을 넘던 이들이 남긴 시비가 거기 성황당 밑에서 끝난다. 조령 관문 넘기도 여기에서 끝난다.

 

<새재를 지나며(過鳥嶺)>

* 내가 일찍이 신묘년(1471) 정월 상순에 이 길을 경유하여 함양(咸陽)에 갔었다.

 

天嶺分符去 천령에 부절 나누어 가노라니(나라님 부름 받아 새재를 넘자니)

峯頭凍映空 산꼭대기 얼어서 창공이 비추이네(봉우리 꼭대기에 겨울 빛이 차갑구나)

會稽懷印返 회계에 인끈 감추어 돌아오니(벼슬길로 돌아가는 부끄러운 이 마음)

澗底葉飜紅 시냇가에 단풍 잎새 번득이누나(개울 바닥 뒹구는 마른 잎 같아라)

魏闕趨蹌遠 대궐에서 추창하기는 멀어졌지만(대궐 안에 아부꾼들 멀어지면)

高堂笑語融 고당엔 담소가 매우 화락하리라(조정엔 오가는 말 화락하리라)

悠悠十年內 십 년 동안 아무 일도 한 게 없어(근심과 걱정으로 십 년을 보냈건만)

不做獲禽功 획금의 공을 이루지 못했네그려(날뛰는 금수무리 잡아내지 못하였네)

- 김종직, 『점필재집』 시집 권12

 

3관문을 지나면 연풍 땅이다. <문경 새재>가 3관문을 지나자마자 <연풍 새재>로 이름을 바꾼 안내문과 비석들이 드문듬성 세워져 있다. 고사리까지 이르는 연풍 새재 곳곳에는 나름의 설명판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아직은 문경 새재만큼 각광받지 못하는 듯하다. 올라도 보고 내려도 보았지만 밋밋한 느낌은 여전하다. 고사리로 내려오는 길 오른쪽에 우뚝 선 산은 마패봉과 신선봉이다. 마패봉 때문인지 연풍 새재는 암행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펼쳐놓은 듯하다. 신선봉을 1910년에 측량한 1대 5만 지형도에서는 회안봉(回雁峰)으로 적었고, 1915년에 우리의 지명을 전국적으로 뜯어고친 결과를 반영한 지형도에는 신선봉으로 적었다. 왜? 무슨 이유와 사연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마패봉 안내 팻말을 따라 만든 옛길을 걸으면 중간에 썪어 넘어져가는 장승을 만난다.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문경 새재에 비해 찾는 사람이 적은 연풍 새재는 더욱 한갓지다. 고사리(古沙里)로 부르지만 그곳이 예전에 신혜원(新惠院)이 있던 마을이다. 30리 길을 걸으며 쌓인 피곤이 몰려오며 주막의 막걸리와 지짐 내음이 꼬드기지만 내리 걸어 연풍레포츠공원에 도착하면 3시 30분쯤 된다. 잠깐 쉬며 주변 풍광을 둘러보고 있으면 242번 충주 시내버스가 달려와서 선다. 4시에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피곤한 몸을 맡기고 한 시간을 달리면 긴 하루 일정이 끝난다. 천리충주 시내버스 나들이의 첫 일정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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