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닌 여행

남상희 | 기사입력 2023/12/18 [08:16]

여행 아닌 여행

남상희 | 입력 : 2023/12/18 [08:16]

▲ 남상희 시인     ©

벌써 12월도 반이 지났다. 한해 마무리하기에 모자랄 듯한 그 며칠이 조금은 아쉽다.

 

내내 가만히 있다가 12월이 다 가고 있다며 얼굴이라도 봐야 한다는 친구들도 있고, 마지막 모임이라 잘 먹어야 한다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겹친 모임을 달력에 빼곡하게 적어 놓고는 저울질도 해본다. 예약된 식당의 메뉴가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또는 자주 만나는 모임으로 아님, 오랜만에 약속이 잡힌 모임으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다들 잠시 멈춤의 시간 3년을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남을 운운한다는 그 자체가 대단하기만 하다. 그래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나야 정답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둘이요 몸이 하나라서 한쪽을 거절하기가 참 고민인 것을 요즘 들어 자주 한다. 행복한 고민 해결 방법 장소를 한곳으로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남편에겐 어릴 적 이웃에서 함께 자란 선후배 모임이 있었다. 친구도 있고 손아래 후배도 있다. 돌아가면서 밥을 사는 모임에 어쩌다 한 번씩 불러주는 달에는 안사람들도 만나 얼굴도 익힌다. 몇 해 그렇게 남편 위주로 만나는 모임을 얼마 전부터 부부가 함께 만나 담소도 나누고 식사도 하게 되었다. 흉허물이 없는 나이도 되었으니 가까운 곳이라도 놀러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놀러 갈 경비도 조금 모였으니 조금만 더 보태면 될 것 같아 맛집 여행 한번 가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성사된 여행이 오랜만에 이뤄졌다. 부부동반이라야 12명인데 그래도 안전을 위해 45인승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마침 다른 소모임 부부팀이 있으니 함께 하자는 이견이 조율되어 2박 3일의 남해안 일대 여행이 결정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몇 년을 잠시 멈췄던 여행이라서 그런지 기대감 반 설렘 반이었다. 부쩍 예년과 비교해 요즘 날씨는 변덕스럽다. 늦가을 또는 초겨울이라도 선선함이 아닌 여름 날씨가 자주 찾아오는지라 가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 날이 돌아왔다. 2박 3일의 일정이라 여행 가방을 준비하면서 알 수 없는 계절의 옷가지를 챙기자니 고민이 여간 아니다. 추위를 잘 이기는 남편에 비해 그렇지 못하다 보니 간절기 옷에 행여 더울까 싶어 여름에 가깝게 옷을 챙겼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알면서도 추우면 한 겹 더 챙겨입고, 더우면 벗으면 되겠지 하면서 가볍게 집을 나섰다. 막상 당일 아침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긴 했어도, 주로 차로 이동하니까 남해안은 괜찮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은 남해 날씨는 추워 봐야 영상이니 괜찮다 했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날씨가 나에게 큰 어려움을 줬다. 일행들 모습은 완전 무장인 데 비해, 혼자 멋 내다 얼어 죽을 판이였다. 여름옷을 겹겹이 입고 바람막이 옷으로 겨우겨우 추위를 견디는데 첫날부터 여행지 날씨는 바람이 태풍처럼 불었다. 머플러로 머리를 뒤집어쓰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겨할 곳에선 추위와 싸우느라 발걸음이 바쁘기만 했던 기억이다. 버스 안에서 내리기가 싫을 만큼 남해안 날씨가 여행 일정 내내 나에겐 잊지 못할 만큼 추위와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인고의 시간을 보낸 기억만 아스라이 떠오른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바람에 바스락대던 억새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하다.

 

밤바람을 가르며 바다 한편 선상에서 여수범퍼다 노래를 들으며 불꽃놀이 관광도 나름 멋지긴 했지만 매서운 바람은 밤이라 더 옷 속을 헤집고 들어 왔다. 맛 좋은 저녁과 따뜻한 숙소에서 온종일 추위에 맞선 언 몸을 녹이며 하루 여정을 풀고 이튿날 하동 케이블카 통영 한산도 투어 알찬 여행 일정을 소화해 내면서 날씨가 누그러지길 바랐다. 마지막 날 거제 외도를 돌아보면서 함께 한 지인은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에 동요되었던지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많이도 샷을 눌러대던 모습이 선하다. 아주 건강했던 모습이 불과 몇 달 전이였는데 부축받으며 걸으면서 한곳 한곳 눈에 담아내는 그 모습이 가슴은 멍하게도 했던 여행이었다. 다음에 더 힘들기 전에 또 한 번 가자는 제안이 새해에 다시 성사된다면 멋 내려다 얼어 죽을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 추위로 여행 아닌 여행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 더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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