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즐거움

신옥주 | 기사입력 2024/02/27 [08:45]

필사의 즐거움

신옥주 | 입력 : 2024/02/27 [08:45]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없이 대여섯 시간을 보내야 했던 학기가 있었다. 그 시간이 심심하고 무료해 뭐라도 해보는 심정으로 필사를 시작했다. 처음에 뭣도 모르면서 호기롭게 논어로 출발했다. 혼자 하려니 꾀도 나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차일피일 미루다 흐지부지 중단했었다. 몇 달이 지나 자신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 너무 한심스러워 필사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지킬 수 있게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너무 많은 시간과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하지 않게 조절했다. 출근하면 청소하고 30여 분 시간이 남는데 그 시간에는 ‘논어’를 노트 한 장 분량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정도는 크게 무리가 없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한문을 익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부담스럽지 않은 양을 하는 게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게 한 방법이었다. 주말에는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를 필사했다. 인문학 선생님들께서 항상 주장하시는 말씀이 번역본이 아니고 원전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원전을 접하기엔 외국어도 딸리고 배경 지식도 부족해서 인문학 선생님들이 서양 문화의 기본적 소양이라고 강조하는 그리스 신화로 시작했다. 하다 보니 어느새 논어는 벌써 두 번 끝마쳤고 다음 달이면 세 번째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는 아직 3권째이지만, 여름 즈음에 다른 책을 도전하게 될 것 같다.

 

필사하면서 누군가 마음이 통해 함께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생기기를 바라며 내가 생각하는 필사의 장점과 단점을 알리고자 한다. 첫 번째,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주변에 신경을 쓰며 오롯이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자기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시간만은 나를 위한 시간이며 마음이 충만해지는 시간이다. 필사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집중하며 책을 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다. 단지 그뿐이다. 출근해서 아무도 없는 30분 동안 조용히 논어를 필사하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는 굉장히 중요한 경험을 매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보이지 않던 문장과 단어를 알게 된다. 소설을 읽을 때는 줄거리에 집중하거나 등장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문장 하나하나를 따져 읽지는 않았다. 인문학을 읽을 때는 책에 있는 내용과 정보를 흡수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필사를 하면서 보이지 않던 단어와 문장을 음미하게 되었고, 하나하나 뜯어보고 곱씹어보게 되었다. 예전에 만난 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마치 처음 만난 친구를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특히 논어는 세 번째 되니 한문을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어느 부분은 한글 부분을 보고 한문을 쓸 수 있는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 한동안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갇혀 살았다. 쇼펜하우어에 심취했을 때는 별일 없어도 힘들어 죽을 것 같고 인생에 회의를 느껴 왜 사는가를 많이 고민했다. 성현들의 말씀은 다 옳지만 내가 그렇게 살 수 없음에 부끄럽고 슬프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필사를 하면 그날 받아적은 문장 하나가 하루종일 마음에 닿아 충만하기도 하고, 한 권이 다 끝난 날은 스스로 뿌듯해 자랑스럽기도 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내가 이런 걸 하는지도 모르지만 혼자 기뻐 사무실에서 날뛰고 하루종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네 번째, 필사를 하는 노트와 펜은 기왕이면 술술 써지는 펜을 써야 한다. 처음에 집에 굴러다니던 펜으로 시작했는데 각이 있어 손가락이 뒤틀릴 정도로 아팠다. 노트도 줄 간격이 너무 좁은 노트는 필사하기 불편했고, 줄이 없는 노트는 쓰기가 힘들어 두 번 정도 바꾸었다. 지금은 나에게 맞는 도구를 선택할 정도는 되어 편해졌다. 큰딸은 나를 보고 쉬운 책으로 시작한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택해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필사를 권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좀 더 열심히, 좀 더 멋있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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