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2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2/27 [15:51]

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2

김희찬 | 입력 : 2024/02/27 [15:51]

 



도로고개를 지나면서 세월을 느끼게 하는 폐가가 하나 보인다. 20여년 전에는 멀쩡했던 집인데, 숲이 우거지며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폐가를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곧장 문강온천지구를 만난다.

 

충주를 소개할 때에 ‘삼색온천도시’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수안보온천, 문강온천, 앙성온천 등 세 곳이 각각 특징을 가진 온천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문강온천은 유황 성분이 많은 온천이다. 달걀 썩은 내음이 진한 문강온천은 두 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 예전에 영업을 하지 않던 길가의 온천이 언제부턴가 다시 문을 열었고, 지날 때마다 주차장에 차가 제법 드는 것을 보면 영업이 되는 것 같다. 작년 가을에 걸을 때는 담배를 사려고 들렀다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역시나 코로나 상황에 힘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럼에도 꾸준히 유황온천욕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도 되지만, 강진(江津) 마을로 들어가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돌이끼가 시커멓게 낀 강진마을비를 따라 들어가면 탁영대(濯纓臺)라는 제법 운치있는 지명이 있다. 고개를 넘지 못하는 개울은 골짜기를 돌아나와 강진마을을 지난다. 그 물 건너편 바위에 탁영대라고 새긴 곳이 있다. 전국적으로 탁영대가 많지만, 여기 탁영대 풍광은 멋지다는 표현은 못하겠다. 다만, 자갈이 깔린 너른 냇가에 여름이면 물을 찾는 이들이 많을 것 같은 생각은 든다.

 

탁영대를 보고 돌아 나와 석문동천을 따라 포장된 농로를 따라 걷는다. 거기부터 ‘석문동천 이야기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청뜰녘으로 이름한 칼바위 앞 들녘까지 이어진 길은 제법 길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지나가는 자동차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살미에서 뚫은 터널을 따라 새로난 길을 지나면 윤갈미고개를 너머 괴산 장연으로 잇는 옛길에 다리가 있다. 거기부터 석문동천을 사이에 두고 친환경벼재배단지가 있다. 왼쪽 앞으로 보이는 산이 재작년엔가 진도 4.3의 지진이 있었던 조곡리 진앙지라는 짐작을 하며 석문동천 이야기길에 이야기를 하나 보태고 문강리와 헤어진다.

 

2㎞에 이르는 1차 이야기길을 지나 토계리 지역에 있는 2차 이야기길로 다시 접어든다. 이야기길? 무슨 이야기를 담은 길일까를 생각한다. 이야기는 길이 끝나는 칼바위에 이르러서 시작된다. 거기에는 2021년 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빈센조> 촬영 장소라며 칼바위 폭포를 앞에 남녀 주인공이 앉아 있는 사진으로 증명을 하고 있다.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1963년에 절반을 폭파한 칼바위 공중에 놓은 출렁다리가 또 하나의 이야기 소재가 된다.

 

출렁다리에 오르는 입구에는 <달천 문화생태탐방로>로 <석문동천 이야기길>과 바통터치하는 새 길의 이름과 함께 <칼바위(劍巖)>을 소개하며 노수신의 시 <황경문의 검암시에 차운하다(次黃景文劍巖韻)>를 새겨 놓은 입간판이 있다. 황경문은 1532년에 태어나 1607년에 돌아간 황정욱(黃廷彧)으로 <지천집(芝川集)>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시를 새긴 입간판을 눈여겨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칼바위에 오르면 왼쪽에 정자가 하나 있다. 나는 거기부터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는 이야기는 팔봉 마을에 있는 팔봉서원과 관련된 것들이 풍성하게 시작된다. 충주의 지난 일을 기록한 <충주읍지(忠州邑誌)>가 시기를 달리하며 여러 개 있다. 그 가운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1770)』부터 제영조(題詠條)가 대폭 확충되며 다양한 소재와 시를 싣고 있다.

 

그 중에 하나로 <초은정(招隱亭)>이라는 정자를 소재로 쓴 시를 소개하였는데, 그것은 팔봉서원과 관련된 듯도 하지만, 시기로 보면 팔봉서원보다 먼저 섰던 정자임을 알 수 있다. 지금 <초은정>은 남아있지 않다. 노수신이 차운한 황정욱의 시가 곧 <초은정>이다.

 

萬壑煙霞紫翠深 골짜기에 연기와 노을이 불긋푸릇 잠기니,

流丹亭影揷溪心 흐를 듯 단청한 정자 그림자는 시내 가운데 꽂혔네.

昔賢祠屋長隣近 옛 현인을 모신 사당은 길게 이웃하여 가깝고,

玉女風流自古今 옥녀의 풍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네.

孤笛倚雲飄爽籟 홀로 피리 불며 구름에 의지하니 상쾌한 바람에 울려 퍼지고

淸湍咽月瀉松陰 맑은 여울목에 달이 뜨니 솔그림자 비껴 흐르네.

夢中一棹猶沿泝 꿈속에는 노 하나 저어 물을 거슬러 올랐는데

覺後塵埃愧滿襟 깨고 나니 세상 티끌이 가슴에 가득하여 겸연쩍구나.

- 황정욱, 「寄題釰巖權直長亭子 名祐 亭在忠州」, 『지천집』 권2. 및 『충청도읍지』 충주목 제영조

 

‘옛 현인을 모신 사당’은 팔봉서원을 말한다. 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액(賜額) 이전의 계탄서원(溪灘書院)을 말한다. 계탄서원은 1583년에 건립에 착수하여 공사를 마치고, 1586년 7월에 노수신이 <계탄서원기(溪灘書院記)>를 지어 내력을 알 수 있다. 황정욱은 계탄서원이 건립된 초기에 이곳에 들렀고, 강 건너편에 있었던 초은정에 올라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면 임진왜란의 핏빛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이 <초은정>은 도로고개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영길(柳永吉, 1538~1601)과 관련된 정자이다. 황정욱이 시 제목에서 밝혔듯이 초은정은 충주에 있는 정자이고, 정자의 주인은 권우(權祐, 1530~1593)라고 밝혔다. 권우는 유영길의 장인으로 예천 사람이고, 임진왜란 당시에 예천의 의병장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시집간 딸과 사위를 위한 선물로 지어준 것이 <초은정>이 아니었을까?

 

<초은정>과 관련된 내력 또는 사연은 유영길의 아들인 유항(柳恒, 1574~1647)이 팔봉에 살 때 들렀던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 지은 <초은정서(招隱亭序)>를 통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내가 일전에 충주 칼바위 서쪽 기슭에 있는 초은정에 올랐었다. 그 주인은 처사 유모로 구봉(九峯) 선생의 아들인데 참으로 고아한 군자이다. 그 주인옹이 이르기를, “‘이 정자는 야트막하게 지었는데, 예전에는 정자가 없었습니다.’ 라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인께서 이곳에 정자를 짓고 초은(招隱)이라는 이름을 걸었습니다. 내가 이제 새로 얽고 이 정자의 옛이름을 따른 것이지 내가 이름지은 것이 아닙니다.”(余日者登中州劒巖之西崖招隱亭 其主柳處士某 九峯先生之阿囝 眞古雅君子也 謂其主翁曰 玆亭結搆日俴矣 古者無亭歟 曰 於古先君外王父搆亭于此 揭名曰招隱 吾乃今又新搆玆亭而因其名 非自創之名)” - 김득신, 「초은정서」, 『백곡집』 책5, 序

 

팔봉에서 봉우리 하나를 더해 구봉(九峯)으로 호(號)를 삼았던 유항이 들려준 초은정의 내력과 그것을 기록한 김득신. 김득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진주성 전투’를 이끈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의 손자이다. 진주성 전투 당시에 김시민 장군은 부상을 입었고, 그를 대신하여 지휘를 맡았던 이가 이광악(李光岳, 1557~1608)이다. 이광악은 팔봉서원에 배향되었던 이연경(李延慶, 1484~1548)의 맏손자이다. 뭔가 엮여질 듯한 이야기가 초은정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솟아날 것 같다. 그러나 초은정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카페가 들어섰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사라진 <초은정>을 생각하며 뻥 뚫린 칼바위 사이로 보이는 팔봉마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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