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세상

남상희 | 기사입력 2024/03/02 [13:16]

환한 세상

남상희 | 입력 : 2024/03/02 [13:16]

▲ 남상희 시인     ©

흐릿하게 보였던 간판도 선명하게 보인다. 한 손으로 한쪽 눈을 가리고 봐도 그대로 보인다. 차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쳐 가는 이정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곁에서 이런 나를 지켜보며 꼭 운문 깨우친 초등학생 같다고 한다. 처음 가는 길에 이정표를 제대로 못 본다고 핀잔도 자주 들었다. 아직은 적응되지 않아서 자꾸 손이 콧등으로 올라간다. 모든 사물이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이는 것이 조금 생경하기도 하다. 저절로 손이 자꾸 콧잔등으로 간다. 흘러내리는 안경테를 치켜올렸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금방 고치기엔 무린가 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헛손질해댄다. 뭔가 허전하기도 하지만 안경을 벗고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정기적으로 안과를 다니면서 눈 관리를 해 왔다. 세월 앞에 노환이란 시력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좋아지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 안경도 바꿔 봤지만 불편한 것은 여전했다. 온도 차이가 나는 실내외를 드나들 때마다 뿌옇게 서린 안경을 벗었다가 썼다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이도 인내를 요구해 왔다. 카톡이나 문자도 이젠 적당한 크기로 읽을 수 있어 좋다. 늘 확대해서 보던 습관도 요즘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금방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 내겐 적응 기간도 행복이다.

 

얼마 전 서울로 안과 검진을 다녀왔다.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두렵고 겁이 나서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는데 아이들이랑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승낙하고 시술을 받게 되었다. 의술이 좋아서 백내장 노안 시술은 옛날처럼 힘들지 않아서 누군가 행여 걱정되어 미루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해 주고 싶다. 짧은 시간에 만족하고 통증 없음에 신기할 뿐이었다. 시술 후 길을 가다가도 서서 멀리 보이는 간판 가까운 곳에 있는 간판 이름을 중얼중얼 읽는 버릇도 생겼다. 남편 얼굴에 잔주름도 선명하게 들어온다. 거울 속 비치는 얼굴은 반백이 된 친정엄마의 모습 많이도 닮아 보인다. 현실 속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대충 넘어가도 될 아주 작은 먼지도 눈 속 담긴다. 이제는 다시 시작이다. 나이가 들면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말도 줄여야 한다던데 그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찾았으니 이제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배려심을 다시 배워야겠다. 환한 세상 앞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진 모습이 대견하다. 구순이 넘으신 친정엄마도 시술하신 지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경 없이 카톡도 보내시고 문자도 잘 보내신다. 그런 엄마가 부럽기도 했었다.

 

시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새해 인사차 친정에 들렸다. 시력도 나쁜데 무슨 선글라스냐고 하신다. 엄마처럼 눈 시술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걱정 가득 괜찮냐고 하신다. 세상에 의술이 좋아서 예전 엄마 시술할 때처럼 그런 세상이 아니라 했더니 당장 칠순 넘은 언니 모시고 병원에 가보라 하신다. 엄마 마음은 나이 든 자식이 더 걱정인가 보다. 그런 엄마가 이해된다. 다가올 봄날 화사하게 핀 꽃 보고픈 마음에 벌써 들로 산으로 자꾸 눈이 간다. 산자락에 가득 쌓인 눈꽃도 선명하니 예쁘게도 보인다. 아지랑이 아롱대는 모습도 놓치지 않고 반길 생각에 자꾸 달력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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