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염원하는 작가 ‘신범승’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24/03/21 [11:19]

통일을 염원하는 작가 ‘신범승’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입력 : 2024/03/21 [11:19]

 

지난해 5월 아트매거진 홍익미술에서 공모한 ‘고흐 보다 아름다운 우리 한국미술’이라는 슬로건으로 홍익 미술 선정 작가 공모전에서 금영숙, 배학기 작가와 공동으로 대상을 받은 신범승 화백. 그는 충주가 낳은 대한민국 미술계의 대가이다.

 

신 화백은 충주병설중학교를 졸업하고 충주사범학교에서 지도교사 이동호 선생으로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이천 대월초등학교에서 첫 초등교사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미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3년 후 중등 미술 교사 자격증을 취득 중등 미술교사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이후 1969년 서울로 옮겨 경기고 등 많은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미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 화백은 많은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노력하였으나 1970년대는 당시는 홍익대와 서울대 양대 계파로 나뉘어진 미술계에서는 지방대학 출신이나 일반 화가들의 국전 등 큰 대회 수상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양대 계파의 계파 싸움은 일반 화가들의 진출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이에 반하는 지방대학 출신과 일반 화가들은 한국화단의 개혁을 위한 새로운 현대미술운동이 시작되었고 이를 기회로 중앙미술대전 공모전이 1978년 창설되었다.

 

이 대회에서 정규대학 출신이 아닌 신 화백이 ‘도자기 장수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는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신 화백의 장려상은 상당한 가치가 있었고 유명 화가들도 입선밖에 못하는 실정에서 신 화백이 장려상을 거머쥔 것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했던 큰 사건이다.

 

신 화백의 그림은 입체파나 추상주의도 아닌 새로운 독자적 화풍을 선보였다는 데서 그의 미술가적 재질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당대의 유명화가나 유명학교 출신들이 주류를 잡고 있는터에 정규대학도 나오지 않은 미술 선생 출신으로써 당당히 정상에 우뚝섰다는 것이 그가 화단에서 인정받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40세에 다시 공부를 시작해 동국대 대학원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러시아 국립 Herzen사범대학 미술교육학 박사까지 취득하게 된다. 또한 1992년 제1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서양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로써 그는 대한민국 미술대가로서 발돋움하게 된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동서울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발탁되어 교수의 꿈을 이루게 된다.

 

신범승 화백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해방직후 남한으로 내려와 경찰 공무원이던 아버지 신우선 씨를 따라 여기저기 옮겨다녔으나 아버지가 충주경찰서로 전출하면서 충주병설중학교를 다녔고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충주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충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충주에서 중원미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충주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남한강전에서 계속 작품을 출품하고 있고 남한강전 회장직도 역임했으며 충주의 크고 작은 행사에 꼭 참여하고 있다. 뼈속 깊이 충주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충주 택견의 창시자인 고 신한승 선생의 친동생이기도 해 그의 충주사랑은 남다른 애정이 깃들여져 있다.

 

신범승 화백은 중앙무대에서의 활동은 더욱 빛난다. 각 지역의 행사는 물론 중요한 대회의 초대작가로 초대되고 있는가 하면 멕시코 국립 수채화 비엔날레 초대작가로 중국 연변대학 미술대학 석좌교수, 한국미술협회 고문, (사)국전작가회 부이사장, (사)대한민국 수채화 작가협회 이사장, 한민족미술협회 회장 등 굵직한 협회의 이사장 또는 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0년 8월 인사아트 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린 비정형의미 작가전에서 평론가 신창섭은 신 화백에 대해 “신범승은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정서가 짙은 인물구성과 관념적인 풍경의 조합이라는 설정을 통해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추억과 결부된 지나간 어느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한 옛 정서는 그만의 심미 표현이며 사실적인 공간에 기반을 두면서도 비정형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 과정에서 사유의 공간이 형성된다. 현실적인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놓음으로써 형성되는 회화적인 환상은 그가 추구하는 조형적인 비전이다. 근래에는 서예의 일회적인 필법에 근사한 힘차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간명한 선묘화로써의 이미지를 도입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조형 공간이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신 화백이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요즘 민족통일에 대한 염원을 화폭에 담는 것에 대해 매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가 황해도 사리원이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이나 활동에는 깊은 애환과 염원이 담겨있는 듯하다.

 

또한 요즘 재경 충북미술가협회 회장으로 인사동의 충북갤러리에서 ‘충북 한국화의 맥’이라는 슬로건으로 한국화의 전개와 확산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박승우, 장우성, 김기창, 박노수, 이열모, 임송희, 황창배 등 7분의 충북 연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충북 예술의 역량과 뿌리를 조명하고 충북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고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전시회를 3월 14일부터 4월 1일까지 개최한다고 했다.

 

이들 7분의 한국화대가 중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은 충주 출신으로 충주가 낳은 한국화의 대가이다. 이처럼 옛 미술의 대가들을 조명하는일부터 그들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일까지 신범승 화백은 계속 분주하다.

 

80이 넘은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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