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2 <갈마고개를 지나서>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3/27 [22:04]

다시 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2 <갈마고개를 지나서>

김희찬 | 입력 : 2024/03/27 [22:04]

 

▲ 중산 삼거리 : 흰 선으로 보이는 고속철도와 느티나무  © 충주신문

 

수회참 자리를 중심으로 마을 안길을 한바퀴 둘러보고 중산리 쪽으로 길을 잡는다. 수회 마을을 감도는 석문동천과 중산천, 그 중산천을 따라 난 길을 걷는다. 오른편으로 중앙경찰학교의 커다란 태극기가 적보산 아래에서는 외려 작게 나부낀다.

 

중산정류장은 삼거리 갈림길에 있다. 오른편은 중산 마을길이고 왼쪽은 갈마고개로 넘는 길이다. 그 중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섰다. 중앙경찰학교를 지날 때부터 선명하게 보이는 흰 선 하나. 새로 놓고 있는 고속철도가 지나는 선로다. 연초에 문경까지 개통을 목표로 한다는 뉴스를 들었었다. 마을 입구에 선 느티나무가 이정표 역할을 했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고속철도가 ‘저곳이 중산이구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표지가 되고 있다. 예전에 줄 서서 기다려 먹던 짬뽕집이 유명했기에 조금 들어가 보았다. 줄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인지 짬뽕집이 문을 닫았나보다.

 

▲ 갈마고개와 갈마고개를 암시하는 음식점 간판  © 충주신문

 

되돌아 나와 느티나무를 끼고 돌아서 갈마고개를 넘는다. 어지간한 고개의 경우에 ‘○○고개’라고 쓴 같은 모양의 표지석이 있지만, 여기는 안보인다. 갈마고개는 과거 충주목과 연풍현의 경계 지점이다. 자동차전용도로처럼 선로를 변경하면서 구불렁한 옛길의 포장 구간이 좌우로 남아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살미면’ 표석이, 그것을 지나 돌아보면 ‘수안보면’ 표석이 양쪽에 있다. 살미면과 수안보면의 경계임을 알 수 있다.

 

야트막한 갈마고개를 올라서면 오른쪽에 흰 건물 하나가 눈에 든다. 겨울에는 포장을 둘렀었는데, 봄이 되면서 포장을 걷어냈다. 고속철도 노선의 살미역인 줄 알았는데, 고속철의 동력인 전기를 공급하는 변전 시설이다. 살미역은 세성리에 짓고 있다. 고속국도 위쪽에 짓고 있어서 차를 타고 갈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살짝 넘은 갈마고개를 되돌아본다. 갈마고개 표지석이 없기 때문에 무슨 고개인지 잘 모르지만, 길가에 있는 음식점 상호에 갈마를 넣고 있어서 장소의 인연을 담고 있다. 그것이 갈마고개를 연상할 수 있는 실마리라면 실마리이다. 또한 그 고갯길은 위험하다. 달리는 차의 속도가 굉장하고, 갓길도 좁아서 큰 차라도 지나가면 이는 바람에 몸이 떠밀리는 느낌이다. 또는 자전거길을 난양이에서 싯계쪽으로 안내하는 이유도 여유없는 길 때문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용천삼거리로 향한다. 길을 가로지르는 고속철도 아래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예스러운 집 한 채가 눈에 든다. 충주 최응성 고가이다. 최응성의 호를 따서 최함월 고가라는 택호로 부르기도 한다. 본래 무릉리에 있었던 것인데, 충주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지금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누군가 살고 있기 때문에 집안에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지는 곳이기도 하다.

 

▲ 살미 용천리의 함월정  © 충주신문

 

집 바깥 마당에는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있다. 함월정(涵月亭)이라는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기 때문에 그 내력은 검색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함월정을 보면서 다른 두 개의 정자를 떠올렸다. 하나는 남파정(嵐波亭)이요, 하나는 영호정(暎湖亭)이다.

 

달빛을 머금는다는 뜻의 함월정, 푸른 들녘의 물결을 바라본다는 뜻의 남파정, 정자 그림자가 호수에 비친다는 뜻의 영호정.

 

▲ 경주 신경주대학교의 영호정  © 충주신문

▲ 괴산 목도로의 남파정  © 충주신문

 

남파정은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청덕사(淸德祠) 입구에 있는 4칸 규모의 정자이다. 목도와 충주 남창 사이에 물결치는 너른 들녘을 바라보는 풍광이 그려지는 곳이다. 영호정은 칠금동에 있었던 정자인데 12칸 규모의 큰 정자이다. 지금은 경주대학교 입구에 옮겨져 있기에 충주에서는 볼 수 없다. 함월정은 용천리로 옮겨놓았고, 4칸 규모이다.

 

규모는 달라도 모양의 유사성이 짙은 정자이다. 특히 함월정과 영호정은 중심에 온돌을 놓아 네 계절 이용할 수 있도록 장치한 점에서 유사하다. 또한 세 개의 정자는 건립 시기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로 당시에 충주 지역에서 유행하던 정자의 양식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다.

 

그러나 영호정은 멀리 경주로 이사했다. 올해 신경주대학교로 학교 이름이 바뀌었고, 문화유산학과가 있어서 실습을 위해 매입하여 옮겨진 것으로 파악된다. 한동안 분규에 휩싸였던 관계로 영호정 역시 방치되어 있었다. 방법이 있다면 충주시에서 매입 교섭을 하여 충주로 다시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점말 느티나무  © 충주신문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용천삼거리에 닿는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신당리를 지나 충주댐 수몰지역을 따라 구단양으로 가는 길이다. 횡단보도와 보행 신호가 애매한 곳이기도 하다. 용천삼거리를 지나며 오른쪽으로 ‘점말길’이라는 도로명과 함께 느티나무가 마을 앞으로 가린 자그마한 마을 하나가 있다. 짧긴 하지만 세성 소재지까지 이어지며 옛길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고, 계절마다 느낌이 다른 길이다.

 

▲ 점말과 마을앞 느티나무숲  © 충주신문

 

중산 마을 입구에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정겨웠다면, 개울가에 늘어선 느티나무가 마을 숲을 이룬 점말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을이 크지 않지만 느티나무숲에 가려 안쪽에 숨은 듯한 점말을 보면서, 과연 여기 어디에 주막이 있어서 길 가는 나그네들의 쉼터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문경 새재를 넘어서며 신혜원 → 안부역 → 온정원 → 수회참 → 살미 새술막으로 이어진 역(驛), 원(院), 점(店)과 참(站)이 옛길의 중심을 따라 조밀하게 이어졌던 상황을 상상하기에 좋은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막이 어디였을까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다만, 충주 지경에 들어서며 첫 주막집은 그 근처에 있었을 듯하고, 그 길의 이정표로 우뚝 서있으며 뜨거운 여름날 나그네가 땀을 들였을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는 더욱 그럴듯한 상상을 하게 한다. 낮은 산을 따라 흐르는 또랑,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 흐르는 예자한칸의 옛길이 살짝 굽어 부드럽게 흐르며 세성까지 이어진다.

 

짧지만 운치있고 정겨운 점말길을 잠시 걷고 바로 도착한 곳이 임경업 장군의 별묘로 불리는 곳이다. 거기에는 임경업 장군 유상(遺像)이 보관되어 있고, 그 앞에는 쌍성각이 아담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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