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지난 지금 팬데믹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늦은 감은 있으나 다음에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이번 독서회에서 ‘페스트의 밤’을 읽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중국을 통해 메르스나 사스같은 독감도 유행했는데, 코로나는 정말 중국의 직격탄을 세계가 맞음으로 중국은 세계인들의 빈축을 사고 스스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정말 두 번 다시 있으면 안되지만, 인간을 어리석어 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후세는 반성하고, 다음 후세는 잊고, 그다음에는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서야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래서 이번에 유럽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페스트에 관한 책을 읽기로 했다. 오르한 파묵의 책은 지리적인 위치가 현재 튀르크라고 부르는 오스만제국을 배경으로 했기에 이해하는데 늘 어려움이 따라온다. 이번에도 역시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개입한 제국 열강의 역사와 페스트 두 소재를 다루었으며, 장장 776 페이지나 되는 분량이라 책을 받아든 순간 이미 당황했다. 독서회 추천이 아니라면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기에 끝까지 읽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페스트의 밤’은 코로나 19가 시작되기 직전 쓰기 시작해서 코로나 시대에 발간된 기가 막힌 타이밍에 출판된 소설이다. 이 책은 전염병 페스트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온 방역 전문가의 살인사건과 오스만을 차지하려는 제국 열강들 사이에서 봉쇄되어 오도가도 못한 사람들이 전염병이 퍼짐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큰 줄기의 내용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비슷하지만, 중간중간 끼어드는 역사적 상상력과 민족주의의 흐름이 난해했다. 복잡하게 얽힌 역사와 사상의 충돌을 소설 속에 녹아들게 만든 점은 작가의 고국에 대한 자부심이지만, 너무 많은 그들만의 단어와 생소한 종교에 대한 서술을 읽기는 쉽지 않아 몇 번이나 책을 읽다 멈추곤 했다.
작가가 절대 의도할 수 없는 시기일 때 책을 썼는데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그러니까 팬데믹의 흐름을 보고 쓴 게 아니라 절묘하게 팬데믹 흐름을 타게 된 소설이라 더욱 이슈가 되었다. 책의 배경은 1901년으로 우리나라도 조선의 멸망을 앞두고 위로는 왕족들과 아래로는 천민까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시기였다. 20세기 초에는 아직 전염병에 대한 약과 방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였는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역 담당자들의 모습,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드물게 보이는 이타심을 발하는 사람들, 방역 정책에 불만릉 가지고 저항하는 사람들, 수긍하는 사람들, 그리고 포기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군상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리의 대처와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페스트의 밤’은 600년간 이어온 오스만제국 몰락기이자 3차 페스트 유행 시기에 동지중해에 있는 가상의 섬 민게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가상의 역사학자 '미나 민게를리'가 화자로 첫 장에서 이미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자 소설 형태로 쓰여진 역사라고 말한다. ‘미나 민게를리’는 오르한 파묵 작가가 매우 좋아하는 등장인물로 보이는데, 책 속에서 몇 장 나오지 않는 그녀를 통해 오르한 파묵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상의 역사학자의 입을 빌려 하는 모습이 정말 재밌다. 작가는 이후 출판할 책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일 것이라고 인터뷰 했다더니 이 책에서도 민게르 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나, 이를 역사소설 형태로 쓴 사람도 모두 여성이다. “작가로서 결심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내 작품에선 여성 주인공이 사건의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나는 중동 지역 남성이다. 그들의 전형적이고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지만 내게도 존재한다. 이런 내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 자크 루소가 ‘자신의 어머니와 다투는 남자는 항상 부당하다’는 말을 했다. 나에게 적용해 보면, 페미니스트 비평가들과 싸우는 중동 남성들은 항상 부당하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터키의 민족주의를 저버리지 않고 열렬하게 서구 열강의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전통을 대립시키고,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위정자들에 의해 무너지는 오스만제국의 아름다운 전통과 역사를 전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결코 쉬쉬하며 감싸지 않는다. 우리도 근래에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많아졌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왜곡된 역사관을 배웠다. 일부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려 노력했지만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도, 독재 정권에 개인이 맞서기도 힘들었으며, 지금처럼 깨어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에 스스로 역사적 수치를 밝히며 다시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는 작가의 용기를 높이 산다. 과거에도 작가는 아르마니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터키 정부를 비판해서 테러 위험까지 겪었었는데, 책 속에서 대놓고 이 문제를 언급하며 터키 정부를 저격하는 것으로 볼 때, 역시 오르한 파묵은 침묵하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매 순간 회피하고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 보고를 하고 자기의 출세만 생각하는 인간들을 보며 속이 터지지만, 와중에 옳은 일은 과연 무엇인지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도 모를 것 같다. 페스트나 코로나같은 국가적인 재난이 우리에게 닥쳐오면 국가가 우리를 보호하는데 기대하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우리의 안위를 걱정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언제나 그럴 것이다. 이타심을 가진 자들은 극소수이고, 나역시 나의 목숨을 우선시하기에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마친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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