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 계족산(鷄足山) 실종 사건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4/13 [14:35]

번외 - 계족산(鷄足山) 실종 사건

김희찬 | 입력 : 2024/04/13 [14:35]

 

▲ 충주목지도  

 

▲ 비변사인방안지도   

 

▲ 엄정면 추평: 엄정면 추평(북쪽)에서 보이는 계족산  © 충주신문

 

▲ 엄정면 목계(북서쪽). 목계에서 보이는 계족산은 특히 뱃길 이용자들에게 등대처럼 역할을 했을 것이다.  © 충주신문

 

▲ 신니면 신덕저수지(서쪽)에서 보면, 계족산은 물론 남산과 대림산, 그리고 대림산 너머에  월악산 영봉도 보인다.  © 충주신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계족산을 입력하면, 일반적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위치한 산으로 검색된다. 충주에도 계족산이 있었다. 하지만 1958년 10월 1일에 열린 충주시의회에서 여론조사 결과 다수 의견이 나온 계명산(雞鳴山)으로 고쳤고, 이제는 옛 이름이 되었다.

 

1년 넘게 <千里忠州>를 진행하며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각 방면에서 충주 시내를 향해 걸을 때면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산이 계족산이다. 그런데 계족산은 조선시대 내내 충주 읍지류의 기록에서 누락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계족산은 충주 읍치(邑治, 관아가 있는 곳)의 동쪽에 있다. 남산 밑에 살았던 내 어린 시절에는 그저 오른쪽 앞에 건너다보이는 큰 산이었을 뿐이다. 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산을 계족산이라고 부르셨기에 계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계족산이라고 부른다. 그냥 보아도 힘들 것 같은 계족산을 만으로 쉰다섯이 되던 지난 3월 23일에 처음 올라봤다. 저기 연수동 후곡산이란 곳에서 정상을 지나 마즈막재[心項峴]까지 4시간 반을 걸었다. 평생 생각했던 것처럼 힘든 산행이었다.

 

조선시대 충주 읍지류는 10여 가지가 된다. 그 중에 산맥의 흐름에서 일정한 체계를 잡아 기록하기 시작한 게 『여지도서』부터이다. 거기에는 ‘소백산 → 대미산 → 모녀현 → 월악산 → 대림산’을 1차적인 지맥 흐름으로 순서를 정한 후, 다시 ‘대림산 → 금봉산 → 심항산 → 종당산 → 오동산 → 대문산(탄금대)’을 충주 읍치를 둘러싼 것으로 기록하였다. 충주 읍지류 산천(山川)조의 기록이다. 그러나 계족산은 안 보인다.

 

충주 읍지류 첫머리의 지도에 부분적으로 표시한 경우는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문수산(文殊山)으로, 『여지도서』에는 종당산(宗堂山)으로, 『충청도읍지』 이후는 계족산으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본문에 계족산을 기록한 것은 없다. 계족산은 기록에서 빠졌지만, 심항산과 종당산은 기록하였다. 가장 높고 웅장한 계족산은 일부러 숨긴 것처럼 보인다.

 

충주 계족산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았다. 먼저 고려 말에 충주에 들러서 여러 편의 시를 남긴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의 시에 계족산이 한번 등장한다. ‘김생사로 돌아가는 침상인을 보내며(送砧上人歸金生寺)’(김구용, 『척약재집』 권하)라는 시에서 김생사가 있던 북진을 중심으로 읍치를 바라보며 오른쪽의 탄금대에 있었던 금휴포(琴休浦)와 왼쪽의 계족산을 공간 지표로 삼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또 하나는 조선 중기에 성여신(成汝信, 1546~1632)이 ‘두류산유람시(遊頭流山詩)’(성여신, 『부사집』 권2)의 서문에서 ‘중년에 중원을 유람할 적에는 계족산-충주에 있고, 절은 우암(牛庵)이 있다.-에 올랐으며’라는 기록이 보인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계족산이 있었고, 계족산으로 불렀던 것이 확인되는 몇 안되는 증거이다. 그러나 충주의 공식 문서인 읍지류에서 충주의 주요 산에 대한 기록에서는 계족산이 보이지 않았다. 읍지류 첫머리의 지도 표시와 함께 <비변사인방안지도>와 1872년에 그린 <충주목지도>에 표시된 것이 고작이다.

 

왜 그랬을까?

 

비슷한 예를 하나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중앙탑(中央塔)으로 부르는 국보 제6호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과 유사하다. 중앙탑 역시 조선시대 충주 읍지류에 기록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에 쓰인 읍지류의 고적조에는 ‘고전장(古戰場)’, ‘청숙비(淸肅碑)’와 같은 시대적 변화를 대표하는 장소와 기념물이 추가되어 있다. 중앙탑의 경우 충주의 고적조에 수록하여 ‘언전(諺傳)’이나 ‘속전(俗傳)’ 등으로 관련 전설을 요약하여 기록했을 법한데 전혀 언급이 없다.

 

중앙탑에 대한 기록은,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배를 타고 지나가며 ‘월탄탑(月灘塔)’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강에서 보고 ‘금탄 북안에 탑이 있다. 높이가 십여 장으로 멀리서도 보인다(金灘北岸有塔 高可十餘丈 遠遠可望)’라고 한 것, 또는 임상원(任相元, 1638~1697)이 중앙탑이 김생의 서재라는 전설을 듣고 ‘김생사탑(金生寺塔)’이라는 시를 지은 것에서 확인되는 것이 고작이다.

 

산 중에 가장 높고 큰 계족산이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규모의 칠층석탑이 기록에서 누락된 것은, 조선시대라는 특수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중앙탑의 건립 연대를 통일신라 시기로 이야기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재위 742~765) 때에 전국의 지명을 한자화한 것으로도 이야기한다. 이 때의 한자화한 지명은 불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계족산이라는 이름도 그 무렵에 고쳤을 것이다. 통일신라 중원경의 계족산이 고려 충주의 계족산으로, 다시 조선 충주의 계족산으로 불려오다가 해방 후 1958년에 대한민국 충주의 계명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불교를 종교ㆍ문화의 배경으로 삼던 시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숭유억불을 중요 정책으로 강하게 실시하던 조선시대에는 계족산을 기록에 남기는 것을 꺼렸을지도 모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며 소백산맥을 넘어 만난 첫 도시 충주를 어떻게 인식했을까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충주를 생각하면 계족산과 중앙탑이 기록에서 누락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늘재를 경계로 경상도 문경읍에는 관음리가 있고, 반대편에는 충주 미륵리가 있다. 불교에서는 관음을 현세불(現世佛)로 미륵을 내세불(來世佛)이라고 한다. 통일신라의 미래, 북방 개척을 통한 신라의 미래, 그 첫 도시인 충주를 미륵세계의 첫 도시로 인식했다면 충주는 곧 미륵불에 해당한다.

 

계족산이 충주 동쪽에 위치하고, 마주 보이는 서쪽 끝에는 가섭산(迦葉山)이 있다. 달천과 한강이 탄금대에서 합쳐 흐르는 아래에 중앙탑이 있다.

 

계족산은 영취산(靈鷲山)이라고도 부른다. 부처의 수제자인 가섭이 여래(如來)의 의발을 전수받고는 이를 부처의 부촉(付屬)에 따라 미륵에게 전하기 위해 계족산에 가서 선정에 든 뒤에 가부좌하고 입멸하자 계족산 세 봉우리가 하나의 산으로 합쳐졌고, 장차 미륵불이 하생(下生)하여 손가락으로 튕기면 그 산이 다시 열리면서 가섭이 선정에서 깨어나 의발을 전하게 된다는 불교 설화가 있다.(佛祖統記 卷5 始祖摩訶迦葉尊者)

 

계족산과 가섭산을 좌우로 거느린 충주는 미륵세계의 중심이 되며, 일반적으로 삼존불이 모셔진 대웅전 앞에 석탑이 위치한 것을 생각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앙탑은 대웅전 앞의 그것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간에 대한 확대, 상상을 통해 불교시대의 충주를 생각하면 계족산과 중앙탑이 조선시대 읍지류의 기록에서 누락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6.25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과정에서 충주비료공장 건설이 한창일 때에, 충주 인사들은 닭이 모이를 찾기 위해 마당을 헤치는 의미의 계족산이라고 여겨, 충주로 모이는 재화를 잃지 않을까 싶어 계명산으로 고쳤다. 그로부터 60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는 닭이 우니 날이 샜다고 하여 20세기 후반기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뒤처진 충주 상황에 계명산을 탓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산 이름 하나에 그렇게 엄청난 주문이 걸려 있다면 다른 이름으로 고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충주의 기준, 충주의 좌표, 충주의 목표를 외딴 곳에서 찾으며 남의 탓을 해온 우리의 모순에서 찾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계족산은 조선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실종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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