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남상희 | 기사입력 2024/05/13 [14:49]

치매

남상희 | 입력 : 2024/05/13 [14:49]

▲ 남상희 시인     ©

멀리 산자락에 운무가 산허리를 감싸고 뭉게구름처럼 피어 눈길을 끈다. 새벽 햇살이 피어나면 거치고 마는 그 짧은 시간에 매일 시야 속 정원을 챙기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싶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행복을 잠시 뒤로 하고 산다.

 

구순이 넘은 친정엄마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옮기셨다. 해야 할 일 접어두고 먼저 엄마를 챙기는 일이 우선인 언니에게 참 고맙다. 자식은 다 같다고 하는데 내겐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치매 증상이 맞다. 더럭 겁도 났다. 길을 가다가도 예쁜 꽃만 보시면 손전화로 열심히 찍어 저장해 놓고 만나면 자랑도 하시던 엄마다. 어쩌다 틈새 시간 들리면 구순이 넘으신 몸인데도 밥상도 손수 차려 주셨다. 그래야 맘이 편하시다고 하셨다. 설거지 청소 모두 당신이 하셔야 직성이 풀리셨던 엄마였다. 깔끔하신 엄마의 살림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고부터 언니의 걱정에 비해 멀리 사는 난 그저 방관자가 분명하다. 그저 언니가 하자는 대로 동의만 하면 됐다.

 

일 년 가깝게 노치원에 다니셨다. 저녁에 잠시 시간 되면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이다. 전화선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늘 변함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오니? 묻는 엄마에게 언제나 비 오면 갈게요 라고 대답 했던 것도 죄송스럽다. 농사라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핑계 아닌 핑계로 미루고 살아온 날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세종서 청주로 매일 오가던 언니가 어느 날 힘에 버거웠던 모양이다. 교대로 엄마를 돌보자는 의견을 냈다. 그동안 편했던 내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한 달에 한 번만인데도 쉽지가 않았다. 집 가까이 차라리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집을 알아보던 차에 언니네 사는 아파트 아래층에 마침 집을 구하게 되었다. 매일 오가던 거리를 이제는 층계만 오르내리면 된다. 이사를 했으니 뒷정리도 언니가 도맡아 했다. 하루 날 잡아 옷 정리한다고 들렸다. 서너 벌만 애지중지 챙겨 입으시니 나머지는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애착을 보이신다.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하신다. 한 말씀하시고 또 자꾸 반복이시다. 멍하니 언니 눈을 바라보니 언니가 뭔가 아는 모양이다. 요즘 들어 자주 하신다니 말문이 막힌다. 해서 서너 달 전부터 약 처방 받고 잘 복용하고 계시니까 지켜보잔다. 환경도 갑자기 바뀌었으니 뭐니 뭐니 해도 내 말은 잘 들으시니 안정 찾을 때까지 소통이나 자주 해 드리라 한다. 가깝게 든든한 언니도 있고 증손주들도 가까이 있으니 이젠 혼자 계시는 일이 없게 되어서인지 그런 친정엄마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이 가볍다. 하루 한 번 전화로 엄마 목소리를 듣는다. 그제보다 어제가 밝아 보이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신나 하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행복이 피어나는 것 같아 내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딸애가 손주들을 데리고 저녁때 왕할머니 댁에 들려서 영상통화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서 공유해 준다. 손녀딸이랑 증손주랑 한자리에 모여서 고스톱을 하시는 할머니 사진이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내가 해드려야 하는 것을 딸애가 대신해 주니 곁으로 모셔준 언니에게 그저 감사하다. 언니도 요즘은 힘이 덜 든다며 엄마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는 여유도 보여준다.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에 있으니 등이라도 달 겸 부처님께 엄마의 남은 생도 지금처럼 행복하길 소원해야겠다. 이제는 자식인 우리가 엄마를 돌 볼 때가 왔으니 이 또한 행복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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