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가 5월 30일 개원하여 첫 등원을 하게 된다. 야당의 압승으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였던 제21대 국회와 다를 바 없이 22대 국회 역시 야당의 압도적 다수 의석이다. 야당이 다수당이 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는 없다. 다만 21대 때 다수당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반성은 필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국회 운영의 가장 핵심인 협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역대 국회가 거의 다수당이 되었을 때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못했던 부분도 사실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 기관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면 국민의 대의기관답게 국민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에 대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 만큼 21대 국회는 다수당이 소수당을 이끌지 못하고 정당성과 상식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데로만 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기 까지 하다. 국민들로서는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그것은 22대 국회 또는 그 이후라도 국회가 국민을 위한 어떠한 행보나 정책에 있어 협의하고 대화를 하며 합리적 해결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하기 때문이다. 큰 힘을 가진 자가 작은 힘의 소유자를 힘으로 강압한다거나 약한 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시키려한다면 이는 매일 다툼으로 일관 될 것이다. 그러한 다툼은 우리 역사에서도 지긋지긋하게 이어져 왔다. 고려의 무신 정권쟁탈이나 조선의 당파싸움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민주 사회를 사는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전철을 교훈삼아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치의 근본적 목적인 국민을 위한 행보에 주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의 교훈에서 고려 무신의 쟁탈은 몽골의 침입을 불러왔고 30년 가까운 대몽항쟁의 결말은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를 가져왔으며 많은 인명살상과 백성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조선의 당파 싸움은 또 어떠했던가. 끊임없는 논쟁과 패를 가른 싸움은 서로 죽고 죽이는 피의 역사 속에 백성들의 삶만 궁핍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 일의 지속됨으로 일본에 36년 동안 치욕의 역사를 안기고 말았다.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 된 나라는 도 어땠는가. 분단의 아픔으로 민족까리의 전쟁을 불러와 많은 살상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나라는 아직도 서로 으르렁 거리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지닌 나라에서 서로 각성하고 새로운 각오로 강하고 복된 나라 건설은 아랑곳없이 국민에게 선택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한 행보는커녕 자신들의 생각 관철, 이념추구, 정권쟁탈을 위한 행보에 더 열중이었으니 국가의 부채는 늘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국민들의 삶은 어려워졌다. 국민이 볼 때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민들의 혐오 첫 번째가 정치인들 아니겠는가. 국민을 위해 일하기로 다짐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혐오대상으로 낙인찍혀서야 되겠는가. 국민의 선택을 받고 국회 등원한 국회의원이 공천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도 당 조직에만 충성해서야 어찌 민주적 국회의원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 표본이 되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소신은 내팽겨진 채 얕은꾀나 내고 위성정당 만들기, 위장탈당, 이념의 굴레 속에 갇혀 상식 밖의 일을 한 사람도 제편이면 옹호하고 감싸는 일들이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었던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2대 국회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당선되어 국회 혁신의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본다. 우리가 역사 속 정쟁을 비난하면서도 권력의 마수에 빠져 비난하던 일들을 스스로 되풀이 하고 있는 정치의 현실은 또다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또한 국민들 사이에 패를 갈라 국민들이 분열하는 망국적 행태가 이어지고 있으니 더욱 한심할 따름이다. 국민들이 좀 더 대의적인 생각과 혁신적인 생각으로 정치를 바라봐야만 한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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