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김영희 | 기사입력 2024/09/30 [08:31]

가을 풍경

김영희 | 입력 : 2024/09/30 [08:31]

▲ 김영희 시인     ©

국화꽂 향기속에 나날이 가을이 익어간다.

 

무덥던 한낮의 더위도 지난 가을 소나기에 한풀 꺾여 물러간다. 들에는 알알이 영글어가는 황금 들판이 고개를 숙인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도토리 줍는 사람을 만난다. 밤나무 밑에서는 알밤 줍는 사람도 만난다. 안림동 과수원에는 빨갛게 익은 홍옥이 가을을 더욱 달군다.

 

하늘은 파랗게 맑아지고 흰구름은 덧없이 흘러간다. 감나무 밑에는 까치가 입맛다신 홍시가 떨어져 터진다. 과실나무는 기후 변화에도 제 때를 알아 익는다.

 

그 많던 고추잠자리는 어디로 간걸까. 가을이면 하늘을 빨갛게 수놓던 고추잠자리가 요즘은 보이질 않는다. 고추잠자리 사라진 풍경아래 담장에는 호박덩굴이 있다. 호박은 탁구공만하게 크다가 떨어지고 크다 떨어지더니, 호박덩굴만 겨우 살아남았다.

 

어느덧 가을 배추는 고비를 넘기고 배추고갱이를 튼다.

 

뉴스에서는 배추값이 한 포기에 2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배추농사가 잘 돼서 김장철에는 배추값이 안정되길 바래본다.

 

어느 노부부가 애써 심은 들깨밭은 지난 더위에 거의 타버리고 순만 겨우 남았다. 지난 더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것 같다.

 

가을 풍경을 한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주택 담장에 서서 벽화를 그리는 화가가 앞치마를 두르고 그림처럼 서 있다. 회색 담장 위에 하얀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 도구가 담잠 아래 빼곡하다.

 

한쪽 벽에는 자작나무 숲이 그려있다. 옆에는 해바라기가 활짝 핀 그림이다. 또 한쪽에는 튜울립이 실화처럼 싱그럽게 그려져 있다.

 

숲이 없는 건조한 골목에 벽화가 하나씩 그려지니 마을이 예뻐지고 걷는 즐거움이 더욱 생긴다.

 

나는 땀흘리며 열심히 벽화를 그리는 화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예술이 자유를 만났네요. 자작나무 숲을 가지 않아도 마치 자작나무 숲에 온 것 같아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작가는 나에게

 

"혹시 시인이세요? 표현이 글쓰는 분 같아요" 한다.

 

나는 "그런가요 이참에 오늘 예술 하나 낳아야겠네요"하고 말하자 우리는 서로 좋은 느낌을 말없이 주고 받았다.

 

벽화가 있는 골목을 걷는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숲이 있고 꽃이 피어있는 길을 걸으니 마음도 한결 밝아지는 느낌이다. 그림도 이 정도인데 작은 공원이라도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2년 전에 벽화 그리기 체험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 작업의 단계가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벽을 비로 쓸고 흰 페인트를 바른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벽화가 우리집 골목까지 그려질 줄은 몰랐다. 올 가을은 벽화 덕분에 새마을이 된 것 같다. 저 벽화에 짧은 시 한편 들어가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이웃에 벽이 없는 아파트 담장에는 빨간 장미가 피어있다. 살아있는 생화 벽화 같다. 이처럼 자연의 예술과 그림의 예술이 가을의 향기를 이어간다.

 

올 가을 풍경이 달달하게 익어가는 가운데, 나의 마지막 청춘이 구월 하늘에 팔월처럼 흘러간다. 새벽 4시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본다. 맑은 동쪽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삼태성과 바라보고 있다.

 

별을 바라보면 내 마음은 별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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