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흠뻑 젖으며 가을이 떠나가더니, 겨울비 지척지척 적시며 겨울이 온다.
비는 계절을 재촉하는가.
비가 내려서인지 20도 가까운 한낮의 온도가 훅 내려간다.
마당 끝에는 지난해 몇 뿌리 심은 부추가 새파랗게 자라고, 쑥도 쑥쑥 자란다. 이웃집 감나무에서는 홍시를 쪼아먹는 새소리가 달콤하게 들려온다.
담장에 가을장미는 수줍게 피어나고 족두리꽃도 우아하게 피었다. 민들레 고들빼기도 야들하게 자란다. 이름모를 작은 들풀도 덩달아 푸르다. 배추밭에 잘 자란 배추는 서리 맞은 기색 없이 통통하고 싱싱하다.
지난해 가을 앙성 온천 축제에서 얻은 하늘마 두개를 봄에 심어놓았었다. 그 하늘마 줄기가 호박덩굴처럼 뻗어가더니 감자 만한 하늘마가 대여섯개 달려있다. 하늘마 한개를 우유를 넣어 갈았더니 먹기에 아주 좋았다. 떡호박도 서너개 호박줄기에 달려있어 아직도 크는 것처럼 보인다.
작고 여린 생명들이 이처럼 강한 것은 무슨 힘일까.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데 아직도 모기는 앵앵거린다.
들에는 작은 하루살이가 요즘도 제철인 듯 기승을 부려 귀찮게 한다. 기후변화로 날벌레의 활동이 길어지는걸까.
가냘프고 청초한 코스모스에는 호랑나비가 앉아있다. 참 예쁘게 어울리는 풍경이다.
어느 밭가에는 망초꽃도 고운 향기를 발하고 있다. 어디선가 꿀벌도 날아와 바쁜 날개짓을 한다. 꿀벌 한 마리가 이꽃 저꽃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입동 지난 날씨가 푹해서일까. 반팔 입은 젊은이들도 보인다.
농가 밭에서는 배추가 자주 눈에 띈다. 김장은 십일월부터 십이월 초까지 이어진다. 김장철이 되면 가족이 모여 김장 담그는 모습이 보인다. 몇몇 친구도 김장철이 되면 친정에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한다고 한다. 가족의 솜씨를 모아 담근 김장김치는 더욱 맛있을 것 같다. 오손도손 모여앉아 하하 호호 웃음이 담을 넘는 김장 담그기는 힘도 들지만,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다.
김장은 했냐는 걱정어린 전화도 받는다. 올 가을 배추농사가 잘 되었는지,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어제는 지인에게서 속이 꽉찬 배추 두 포기를 얻다. 나는 김장을 하지 않고 겨울을 난다ㆍ이참에 맛있는 김치를 담가볼 생각이다.
우수수 낙엽이 지는 가운데 푸른 새싹들이 낙엽을 들어올린다. 가로수 가지에 구멍이 숭숭 뚫린 푸른잎 사이로 거미 한마리가 세상을 바라본다. 나무들이 옷을 벗는 가운데, 깨어나던 풀은 깨어나다 까무러쳐도 또 일어난다. 나는 십일월의 푸름을 혹여 밟을까 하여 살포시 걷는다.
11월은 음력 보름과 양력 보름이 겹치는 달이다. 그래서인지 보름달도 푸른빛이다.
은행잎이 떨어져 길을 낸다. 노랗게 쌓인 틈으로 드문드문 새싹이 얼굴을 환하게 내민다. 기후는 변해도 자연은 기후를 즐기는 것 같다.
기후변화와 온도 변화에는 자연이 가장 예민하게 적응하는 것 같다. 올가을에는 여행 한번 못했지만 해가 저물기 전에 가까운 곳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다.
푸른 11월이 나란히 서서 십이월을 마중할 준비를 한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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