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게를 온전히 보여준 책, 칼에 지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24/11/25 [09:12]

가장의 무게를 온전히 보여준 책, 칼에 지다

신옥주 | 입력 : 2024/11/25 [09:12]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정말 아주 오랜만에 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칼에 지다‘는 주인공을 실존 인물로 내세운 일본 역사소설이다. 도서관에 갔더니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에 합치면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우리 역사도 힘든데 일본 역사라니 미치겠다고 중얼거리며 빌려 왔다. 며칠을 펼쳐보지 않고 두었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밤을 새다시피 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일본 역시 열강의 힘에 개국과 쇄국 두 패로 나뉘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에 갈 길을 잃은 사무라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이 바로 ’칼에 지다‘이었다.

 

저자 아사다 지로는 막부 시대가 종말을 고하던 시기,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한 사무라이의 일생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일본 막부와 신센구미 역사를 조사하면서 읽어야 할 만큼 배경지식이 필요한 소설이었는데, 미국은 우리나라를 제일 처음 개항시키고 열강들이 우리나라를 노리자 뒤로 쏙 빠져나간 나라였는데, 그전에 일본에게도 똑같은 행보를 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페리 제독은 미국 함대를 끌고 와 도쿠가와 막부시대인 일본을 개항시킨다. 당시 동북 지역은 몇 년 동안 이어진 기근으로 에도 중심의 번들은 경제 상황이 힘들어 농민뿐 아니라 사무라이조차 생계를 위해 상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잡일이라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화자로 등장하는 신문기자는 신센구미 일원으로 활약했던 말단 무사 요시무라 간이치로를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정해진 신분을 벗어날 수 없지만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그를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 애쓴다. 신문기자는 신센구미 생존자들뿐 아니라 요시무라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증언이나 기억, 남겨진 편지를 연결해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던 당시 일본 사회를 보여주고, 그 삶을 오롯이 지키고자 했던 요시무라를 통해 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나 도태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힘겨운 투쟁을 그린다. 신센구미는 에도 시대 말기인 1863년에 만들어진 무사 조직이라고 한다. 다른 책에서는 보통 신선조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낭인들의 집합체라는 인식밖에 받지 못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그들은, 우리나라 구한말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으나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던 의병과 비슷한 존재로 묘사되어 너무 흥미진진했다. 당시는 도쿠가와 가문의 장기 집권으로 유지되던 막부 세력과 천황에게 정권을 넘기라는 사쓰마 조슈 번의 세력이 암투를 벌이던 시대였고, 신센구미는 이들 중 막부 세력을 보위하는 집단이었는데, 막부 세력이 실권을 잃게 되자 천황을 전면으로 내세운 왕정복고로 회귀하는 메이지 유신에 막부 세력은 신센구미를 전면에 내세우고 도망가버려 총알받이가 되어야했던 이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임오군란 당시 일본군에게 모든 무기를 빼앗기고 물러나야 했던 조선의 군인들과 무기를 내놓지 않고 일본군에게 대항하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말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저마다 있었고,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만큼 자신의 일신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이 위대한 것은 당연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본과 싸우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타부타 평가내릴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다.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저물어 가는 막부 세력의 전위대인 신센구미 일원으로서 살인을 서슴지 않았고,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패잔병 신세가 되었다. 쫓기던 그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난부 번의 오사카 지부에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모습이 첫 장면이다. 비록 자신은 신센구미에 들어갔지만 고향인 모리오카로 돌아온 것인데, 어린 시절 동무였으며 이후에는 그가 속한 조직의 조장이기도 했던 오노 지로우에몬은 그에게 할복을 명한다. 무사가 할복하는 것이 명예이고 참수형을 당하는 것이 수치인 이유를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어 일본인들이 왜 할복을 중요시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할복 명령을 받고 고뇌하는 요시무라를 보여주는 1868년과 오십여 년 후 익명의 기자가 노인이 된 신센구미 조직원들을 만나는 두 시선이 교차되는 구성으로 진행된다. 어느 나라나 시대물은 배경지식이 부족해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사전과 네이버 지식과 위키백과의 도움을 받으며 읽어야 하는데, 이 책은 특히 많은 것들을 여기저기서 찾으며 읽었다. 삶이란 항상 살아남은 자들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고, 역사는 강한 자들의 기록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요시무라를 통해 ’의를 위한 죽음이니 뭐니 해도 결국 개죽음이고, 죽지 않고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무사도나 할복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백성을 돌보지 않은 군주보다 가족을 섬기는 것으로, 사무라이보다는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던 하급 무사였던 요시무라가 추구한 의가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하면서 조용히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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